미국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정신분열증(조현증)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 중의 하나로 이중구속(Double bind)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중구속은 한 메시지에 두 개의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전달시켜, 듣는 사람의 정신상태가 꼼짝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동공지진 같은..)을 의미한다. 초기 연구 자체는 주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보라고 권유하고, 아이가 옷을 가져오면 '다른 옷은 마음에 안 드니?'라고 말해 아이를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 반복되면 아이는 무기력해지고,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이 시작될 수 있다.
이중구속에 대한 상황은 부모-자식 관계를 넘어서 직장생활에서 상사-부하직원의 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직장에서 나타나는 이중구속의 표현과 상황들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회사에 주인입니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데로 열심히 일 하세요.
B 프로젝트를 하겠단 말이군요. 난 A 프로젝트가 참 마음에 들었는데.
이거 잘했네, 그런데 지난번에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어?
내가 너를 정말 생각하서 하는 말인데, 이번 프로젝트는 성공 못할 것 같아.
워라밸을 잘 챙겨야지. 난 우리 직원들 건강이 최우선이야. 아참, 그 보고서는 내 책상에 놓고 퇴근해요.
이거 왜 못해? 너 창의적이잖아. 창의적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내놔봐.
여러분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자율적으로 일할 것을 지시합니다.
(부하) 팀장님, 이번에 시키신 기획서 제출합니다. (팀장) 그래? 저번에 시킨 것은 아직 안 되었나?
(얼굴을 찡그리며) 저한테 편하게 말하세요.
직장상사가 진심으로 배려해주고 챙겨주나, 업무 역량이 낮아서 일을 하다 보면 매우 답답한 경우
솔직한 피드백을 달라고 하여, 말을 했더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열을 내며 반박하는 경우
이런 표현을 보여주는 상사로 인해 절망감과 좌절감을 겪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중구속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사와 같이 일 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이중구속 상황은 상사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발생될 수 있다. 그 예시들은 다음과 같다.
미사여구로 가득한 회사의 핵심가치를 강조하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상반되게 의사 결정하는 경우
창의와 혁신을 발휘하라고 하며, 정작 발휘할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제출하면, 제안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조직문화의 경우
회사에 실망하여 퇴사하고 싶은데, 회사에 매우 어렵게 입사했기에, 퇴사하지 못하는 경우
워라밸 등 선진적 조직문화를 홍보하지만, 정작 강도 높은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경우
이렇게 회사 또는 상사로부터 이중구속의 늪에 빠져버리게 되면, 이유를 알 수 없으나 회사에 나오면 기운이 없고, 업무 의욕이 없어지고, 월요일이 싫어지고, 그곳을 그냥 도망가고 싶어 진다. 이런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로 다른 동료,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해도 이중구속의 특성상 큰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중구속은 긍정적 요인과 상반되는 부정적 요인이 같이 얽혀서 하나의 메시지로 전달되는 복잡성 때문이다. 직접 그 늪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고, 그래서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심으로 피상적인 충고와 어설픈 위로를 해주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게 된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 더 상황을 악화시키게 된다.
그래도 너희 상사는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그래도 너희 회사는 돈 많이 주고 알아주잖아.
그래도 거기에서 3년만 버티면, 앞으로 탄탄대로래.
그래도 지금 네가 최악의 상황은 아니잖아.
그래도 그 팀장이 XX 팀장보다는 낫잖아.
그래도 그 팀장은 ~~ 장점이 있잖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좋은 점만 보고 배워.
이중구속 상황에서 지인들의 위로가 피해자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어 상황은 더 나빠지게 된다. 이렇게 이중구속 상황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여직원이 퇴직 면담을 요청해 왔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일에 의욕이 없고, 빨리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한다. 자기가 여기에 계속 있으면 죽을 것 같다며 한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회사도 좋고, 사람도 좋은데 자기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이중구속은 권위가 있는 쪽에서 권위가 없는 쪽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상황에서만 발생된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상사와 회사가 부하직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에서 비롯된다. 즉 메시지를 만들어 내는 부모, 상사, 회사가 변하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부모, 상사, 회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 이중구속 늪에서 벗어나는 특별한 해독제나 뾰족한 탈출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해 매우 송구하다. 그나마 나의 식견으로 내가 제안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런 상사와 같이 일할 때는 최대한 반복적이고 정형적인 업무를 중심으로 일하여 상사와의 대화를 최소화하기 바란다. 둘째, 최대한 빨리 새로운 곳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옮길 때는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가장 정신없이 바쁜 곳으로 가길 바란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회사에서 얻은 상처는 일로 치료되고 잊어야 후유증이 적다.
결국 이중구속 메시지를 전달하는 나쁜 상사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나쁜 상사인가? 이중구속을 쓰는 상사는 보통 조직에서 튀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상사에게는 쓸 수 없고, 아랫사람들에게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조직에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참고로 위, 아래 가리지 않고 이중구속을 다 쓰는 사람들은 또라이 그룹으로 분류가 된다). 이런 은둔의 고문관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상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내 경험상,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회사 팀장들 중에 나쁜 상사는 없었다. 보통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적응을 하지 못하고, 성적도 좋지 않다면, 그것은 그의 부모가 잘못된 습관들을 가지고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부모가 바쁜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부모가 바빠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이다. 바쁜 사람들의 자녀들도 바르게 자란 경우가 아주 많다. 자녀의 인품과 성장은 부모를 보고 배우기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어떤 상사와 일 할지 고민이 있다면, 술자리에서 그분의 자녀에 대해서 물어보아라.
이런 나쁜 상사들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아랫사람이 부정적 피드백을 제공하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피드백이라는 것이 좋은 것과 부족한 것이 같이 섞이기 마련이고, 좋은 것은 계속 강화시키고, 부족한 것은 채워가야 한다. 하지만 나쁜 상사들은 아랫사람들로 지적당한 것을 참지 못한다. 이들의 그릇이 거기까지 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 없이 직급만 높아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술자리와 같은 편한 상황에서, 어떤 상사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 가볍게 탐침 질문을 던지고 그 반응을 살펴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