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권위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강렬한 두 가지 욕구로, 성적 욕구와 중요한 인물로 대우받고자 하는 자존감 욕구를 언급하였다. 이 중에서 자존감 욕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될 수 있으나, 특히 직장에서는 동료, 부하, 상사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직장에서 이 욕구의 모습은 자신에 대한 호칭 변경이 수반되는 승진을 통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자존감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호칭과 승진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통상 직장에서는 승진에 대한 가이드가 있어, 승진 가능성과 시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한 구성원이 예상을 뒤엎고 빠르게 발탁 승진할 경우, 그 조직에는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발생한다. 상사는 이제 발탁 승진자가 곧 자신의 경쟁자가 될 것을 깨닫게 된다. 윗선에서 직접 챙기는 발탁 승진자의 모습을 보게 되면, 이제 내가 조직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 수도 있다. 동료들은 발탁 승진한 동료로 인해 자신이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비교되는 것과 같은 자괴감을 느끼게 되고,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라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승진자에 대한 동료애를 잊어버리고, 도움의 손길을 차츰 거두게 된다. 공동의 적이 생기면, 내부 결속은 공고해지는 법으로, 발탁 승진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암묵적인 연합전선을 구성하게 된다. 발탁 승진자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발탁 승진자의 편으로 가거나, 연합전선에 합류하거나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들은 연합전선으로 합류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발탁 승진자는 알게 된다. 그 누구 하나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다는 것을.
사격수 게임
세 명의 사격수가 있었는데, 이들 간에 총싸움이 벌어졌다. A 사격수는 가장 뛰어나서 10발 중 8발을 명중시킬 수 있고, B 사격수는 10발 중 6발을 명중시킬 수 있다. C 사격수는 가장 능력이 떨어져 10발 중에 단 4발만 명중시킬 수 있다. 만약 세 사람이 동시에 총을 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A는 B를 먼저 공격할 것이고, B와 C는 당연히 A를 먼저 공격할 것이다. 따라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낮은 것은 가장 능력이 뛰어난 A 사격수이고,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역설적으로 C 사격수가 된다.
-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장원청, 2020 -
발탁 승진은 마치 독이든 성배와 같다. 이것을 마시고 그 독을 이겨내어 운 좋게 살아난다면 명예와 큰 부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대 부분의 경우 그 독으로 인해 고통받고 괴로워하다 쓸쓸한 파멸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이런 발탁 승진자에 대한 견제로 조직력이 약화되는 폐해를 경영진과 인사팀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발탁 승진은 통상 매우 보수적으로 검토된다. 그럼에도 발탁 승진을 강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조직을 이끌 사람을 키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포석이 깔려 있다 (능력 있는 50대 젊은 대표이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40대의 임원들이 경쟁하고 있는 구도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승자의 저주와 같이, 발탁 승진자는 커다란 성장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너는 회사의 핵심인재잖아'라는 시기 어린 질투 속에 도움은 점점 적어지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은 강해져, 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강행군으로 인해 때때로 자신의 페이스를 잃고, 프로젝트를 망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누구에게 터놓고 이야기할 동료와 상사가 없어 이중, 삼중고를 겪게 된다.
*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에서 '우수한 사람에 대한 시기심'을 여러 번 언급했다. 대학자가 인정한 바와 같이, 우수한 사람에 대한 질투는 생각보다 매우 강렬하다.
회사에서 10년간 8번의 직무를 바꿔가며 3번의 초고속 승진을 한 그녀가 나를 찾아와서 하소연했다. 지금 맡고 있는 큰 프로젝트로 인해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젊은 나이에 벌써 대상포진에 걸리고, 원형 탈모가 올 정도로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자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많이 힘들어하고, 일부는 나와 같이 일을 한 후에는 위궤양에 결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부는 스트레스로 인해 주말 사회인 야구리그도 끊고 주말에는 숨만 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잘해보려고 주변을 독려하고,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위 사례에서와 같이 발탁 승진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모습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조금씩 떨어진다는 것이다. 명석한 두뇌와 과감한 추진력으로 업무에 있어서 승승장구하게 되다 보면, 자신의 성공 방식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지고 사람보다 일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승진이라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확고해져 간다. 이런 현상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인간의 뇌에서 공감 능력의 원천이 되는 미러 신경이 손상을 입게 되어, 뇌의 공감 능력이 점차 퇴화된다고 한다. 즉, 권력을 가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뇌의 구조가 바뀌어 공감 능력이 퇴화되고, 다른 영역의 뇌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옛날 따뜻했던 팀장님이 승진하여 고위 임원이 되었을 때, 냉정해 보이게 되는 것도 이런 인간의 뇌 과학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이렇게 승진을 통한 권력을 갖게 되어, 나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능력들이 점차 퇴화되고 없어지는 것을 권력 역설이라고 부른다.
무릎에서 피가 나서 어떤 아이가 울고 있을 때, 무엇이 먼저 보이나요?
A : 울고 있는 아이
B : 무릎의 피
권력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을수록,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우는 아이는 잘 보이지 않고, 어디에서 피가 어느 정도 나는지만 잘 보이게 된다.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초고속 승진한 직원과의 면담에서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제가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있는 것 다 아실 거고,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것도 인사팀에서 다 알았을 텐데, 왜 저에게 아무 이야기해 주시지 않았나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망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질문에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음.. 내가 자네에게 동료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 내 기억에 최소 5번은 되는 것 같네. 한 번은 심하게 경고를 주기도 했었고. 내가 누차 이야기를 했는데, 자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니 당황스럽군. 자네가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었지, 회사 사람들이 다들 자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
빨리 승진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성공이라는 언덕에 계단이 있다면, 그 계단이 있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언덕을 오르는데, 계단을 한 단계씩 차곡차곡 밟아 올라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더 높이 올라갈수록 차이가 나타난다. 도토리가 아름드리 참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몇십 년이 걸린다. 허나, 빨리 자란 나무는 쉽게 부러진다. 그래서 난 빠른 초고속 승진보다는 주변의 풍경과 사람을 보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을 항상 권장한다.
자동차가 빨리 달리면, 주변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앞만 보게 된다. 우리가 빠른 승진을 추구한다면, 삶의 생애 주기에 따라 펼쳐지는 아이의 탄생 울음소리, 첫걸음마의 기적, 부모님의 결혼 50주년 등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회사에서의 성공만이 눈에 보이게 된다. 하지만, 인생에 성공한 인재들은 회사의 성공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생의 중요한 축인 가정, 직장, 자아, 교우 관계 측면에서 모두 건강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신이 회사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렇다면 빠른 승진보다는 한 발자국 정도만 앞서가는 직장 생활을 하기 바란다. 이 세상에는 승진 말고도 흥미롭고, 즐겁고, 소중한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당신이 아직 이런 것을 찾지 못했다면, 미안하지만 당신은 '헛똑똑이'이다. 우리는 버릴 때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는 급격하게 변했다. 어린이들의 최고에 꿈은 연예인이고, 노인들의 꿈은 9988234이다. 이 암호 같은 숫자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아누웠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을 찾고 있는 이 시대에 빠른 승진으로 빨리 퇴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사회 변화에 맞게, 인생의 성공 전략을 변경하는 것이 그리 나쁜 수라고 보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