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이 바라본 소주는 모두 이슬이
이번에 출간한 술로 보는 세계사 '술기로운세계사' 에는 참 빠진 내용이 많습니다. 워낙 많은 내용을 넣으려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중 아쉬운 부분이 몇 개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참이슬과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의 공통점>입니다. 이 둘은 도대체 뭐가 같을까요?
한국의 소주에 자주 붙는 이슬로(露)
술을 조금 공부하신 분은 아마 느낌이 올 겁니다. 한국의 소주에는 뒤에 이슬로(露)가 많이 붙습니다. 감홍로, 홍로주, 노주(로주) 등이 대표적이지요. 바로 진로나 참이슬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습니다.
이슬로(露)가 소주에 붙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줏고리, 또는 증류기를 사용하여 술을 증류하면, 마치 증류주가 이슬처럼 똑. 똑. 똑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알코올이 차가운 매질을 만나면 이슬처럼 다시 떨어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지요.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의 구성
그렇다면 영어로 증류라는 의미의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은 어떻게 구성된 단어일까요? 이것은 "증류 과정 또는 행위"는 중세 라틴어 distillationem (피동적인 distillatio )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루는 단어가 dis-"분리"(참조 dis-) +stillare"떨어지다, 떨어지다는 것이죠.
라틴어의 가장 많이 남은 이탈리아어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스며들다는 단어가 'stillare'라는 것, 그리고 스며든다는 의미를 담은 'stilla'는 이슬 및 방울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 스며드는 것은 방울이나 이슬의 작은 물방울이라는 것이지요. 즉 소주의 이슬과 영어의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은 같은 뜻이라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배웠던 'still'은 '여전히', 그리고 '가만히 있는, 고요한, 정지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라틴어의 어원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셈이 됩니다.
디스틸레이션(Distillation)이 라틴어에서 온 이유
그렇다면 왜 라틴어 또는 이탈리아어가 증류라는 단어와 관계가 깊을까요? 아시다시피 증류주를 만드는 기술인 연금술은 중동의 아랍권에서 왔죠. 그런데 이 아랍권과 가장 많은 교류를 한 곳이 바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였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배도 바로 이 베네치아에서 많이 이뤄졌죠
이 베네치아가 아랍권과 무역을 하면서 설탕 및 향신료를 반독점했고 그래서 부자도시가 되었는데, 오스만 튀르크(오스만 제국)이 떡 하니 들어서면서 이제까지의 루트를 장악하니, 이제 교역이 어려워지니 신항로를 찾았던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마이너였던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인도, 아메리카, 나아가 세계일주로 이어지는 뱃길을 발견하게 되죠.
흥미롭게도 자연상의 이슬이 맺히는 현상과 소주 내리는 현상도 비슷합니다. 결국 더워진 공기가 식어지면서 생기는 것이 이슬. 뜨거워져 기체가 된 알코올이 다시 액체가 되는 현상과 유사하지요.
즉 소주는 우리에게나 서양에게나 그리고 자연상에 있어서도 진짜 이슬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