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다른 맥주 음용 스타일
얼마 전 영국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셔서는 안 된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조사 결과, 젊은 세대의 약 30%가 맥주에 얼음을 넣어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지만, 전통주의자와 애호가들은 이를 “맥주의 모독”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런던의 한 펍에서는 얼음 주문만으로도 눈총을 받았고, 대형 펍 체인 ‘위더스푼(Wetherspoon)’ 창업자마저 “맥주에는 성역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맥주는 얼음을 넣어서는 안 되는 술일까?
한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에서는 오히려 차갑게, 때로는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어디에 있을까.
맥주의 온도는 스타일마다 다르다. 카스 및 테라, 아사히 수퍼 드라이, 버드와이저 등의 라거 종류는 차갑게 마실수록 청량감이 살아나고, 영국에서 많이 마시는 에일은 약간의 온도를 허용해 향과 맛을 더 풍부하게 즐긴다. 즉, ‘얼마나 차갑게 마셔야 하는가’는 맥주가 가진 개성에 따라 달라진다.
유럽은 맥주를 안 차갑게 마시는 것이 전통
흥미로운 점은 지역별 문화다. 유럽보다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맥주를 훨씬 차갑게 마신다.
서양에서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부터 맥주를 즐겼다. 따라서 미지근한 온도도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한국과 일본은 냉장 시스템이 보급된 뒤 맥주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자연스레 ‘맥주는 시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해진 것이다.
통맥주를 생맥주로 번역한 일본
여기에 번역의 힘도 있었다. 영어의 ‘드래프트 비어(Draft Beer)’는 원래 ‘통에서 뽑아낸 맥주’라는 뜻인데, 일본은 이를 ‘생맥주’로 옮겼다. ‘생’이라는 단어는 곧 ‘신선함과 차가움’을 강화했고, 이는 결국 맥주 온도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물이 맑아 시원하게 마신 한국, 그 반대였던 중국
물의 성격 역시 맥주 온도에 반영됐다. 산이 많고 물이 맑은 한국과 일본은 예부터 시원하게 마시는 습관이 있었지만, 석회질이 많거나 위생 문제가 있던 지역은 물을 끓여 마셔야 했다. 중국이 맥주를 우리보다 덜 차갑게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한국과 일본은 태생부터 음료를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더 익숙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온도가 바꾸는 맛
온도는 맥주의 풍미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온도가 높으면 알코올 휘발이 커져 향과 단맛, 쓴맛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온도가 낮으면 향은 줄지만 탄산이 살아나 청량감이 극대화된다. 결국 맥주 맛은 ‘시원함과 풍미 사이의 균형’에서 결정된다.
얼음 논쟁
동남아시아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더운 기후와 늦은 냉장 시스템 도입 때문이고, 알코올 분해 효소(ALDH2) 활성도가 낮아 도수를 줄이려는 습관도 작용한다. 얼음을 넣어 알코올을 희석하고, 동시에 차갑게 즐기는 것이다.
반대로 유럽 및 영국 같은 전통 맥주 강국에서는 얼음을 넣는 순간 풍미가 깨진다고 본다. 마치 잘 끓인 김치찌개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일로 여겨진다.
아시아인보다 유럽인이 훨씬 알코올 해독능력이 강하다. 그러니 아시아인은 당연히 얼음을 넣는 것이 더 편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맥락
맥주를 차갑게, 미지근하게, 혹은 얼음을 넣어 마시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기호 차이가 아니다. 그 뒤에는 역사, 기후, 언어, 문화가 얽혀 있다.
유럽인에게는 얼음이 용납되지 않지만, 동남아에서 오래 살다 보면 결국 얼음을 넣어 마시는 습관에 익숙해질 수 있다. 영국에서 벌어진 논란 역시 맥주라는 술이 세대와 전통, 그리고 변화를 가르는 문화적 상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얼음 넣은 맥주가 죄인지 취향인지는, 결국 당신이 어떤 문화적 맥락 속에서 그 맥주를 마시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PS: 이번에 KBS유튜브 뉴스 크랩에 출연하면서 전달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련 영상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