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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천재 오타니의 적수는 술 장인들이었다

야구 천재 오타니와 밀워키 브루어스

by 명욱

지난 주, 메이저리그 엘에이 다저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은 야구팬이라면 평생 기억할 경기였다. 선발투수로 등판한 오타니 쇼헤이는 6이닝 동안 10개의 삼진을 잡고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홈런 세 개를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투수이자 타자로서 경기 전체를 지배한 오타니의 모습은 ‘이도류’의 진수를 보여주는 역사적 순간이었으며,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장면이었다.



밀워키 부르어스란 의미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던 것은 상대 팀, 밀워키 브루어스였다. 팀 이름부터 남다르다. 브루어스(Brewers)는 양조업자, 즉 술을 빚는 사람을 뜻한다. 야구팀이 스스로를 ‘술 장인’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미국 맥주 산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밀러(Miller), 파브스트(Pabst), 슐리츠(Schlitz), 블랫츠(Blatz)와 같은 주요 양조 기업이 이곳에서 탄생하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전체 맥주 생산의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덕분에 밀워키는 자연스럽게 ‘Beer Capital of America’라는 별칭을 얻었다.


오타니.jpg 사진 세계일
밀워키가 맥주의 메카가 된 이유

밀워키가 맥주 산업의 메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히 이민자의 기술뿐만 아니라, 지리적 조건과 기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시가 미시간 호수, 즉 오대호에 인접해 있어 물류와 재료 운반이 매우 유리했고, 겨울철 기온이 낮아 저온 발효가 가능한 라거 맥주 제조에 최적이었다. 이러한 조건은 맥주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장기간 보관하는 데도 적합했다. 또한 금주법 시대에도 캐나다를 통해 밀주와 위스키가 밀수되며 지역 산업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도록 했다. 이로써 밀워키는 단순한 맥주 생산지가 아니라, 북미 맥주 및 증류주 산업의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체코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은 유럽에서 배운 양조 기술을 그대로 적용하며 대규모 양조장을 설립했다. 이 시기 탄생한 밀러, 파브스트, 슐리츠, 블랫츠 등의 브랜드는 미국 맥주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성장에는 사회적, 정치적 도전도 함께했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시행된 금주법(Prohibition)은 모든 양조장을 사실상 폐쇄시켰다.


단순히 술을 금지하는 운동이 아니라, 급격히 성장한 독일계 이민자와 그들의 산업을 경계하려는 정치적 이유도 작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독일과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독일식 이름을 가진 기업과 개인은 사회적 압력에 따라 미국식 이름으로 바꿔야 했다. 예를 들어 뮬러(Müller)는 밀러(Miller)로, 슈미츠(Schmitz)는 스미스(Smith)로 변경되었다. 이는 독일계 미국인이 아닌 ‘그저 미국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자 생존 방법이었다.


금주법 시행으로 맥주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지만, 양조업자들은 대체품을 통해 명맥을 이어갔다. 비알코올 맥주, 몰트 시럽, 치즈, 탄산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며 생존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캐나다에서 수입한 밀주와 위스키를 통해 수요를 충족시켰다. 이 시기를 거치며 밀워키는 산업적 위기 속에서도 전통과 기술을 유지하며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695d0550-f76c-4bc4-8d38-55fa157ab8fc.png AI를 통해 재현한 밀워키 브루어즈의 초기 로고 이미지샷. 야구공 안에 생맥주 이미지가 있다.


금주법이 해제된 1933년 이후, 밀워키의 대형 양조장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활용해 대량생산형 맥주 시장을 재건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장 기술의 발달과 TV 광고의 활용은 밀워키식 맥주를 대중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47년부터 TV 프로그램을 통한 맥주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대부분의 주요 맥주 브랜드는 스포츠 중계와 각종 TV 프로그램 후원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1970~8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 산업형 맥주의 단조로움에 대한 반발로 홈브루잉(Homebrewing) 붐이 일어났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가정 양조 합법화에 서명하며 개인이 맥주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를 계기로 크래프트 맥주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밀워키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져 Lakefront Brewery, Good City Brewing, MobCraft Beer 등 혁신적인 브루어리가 탄생했다. 이들은 친환경·유기농·글루텐프리 맥주를 선도하며, 소비자 참여형 크라우드소싱 시스템으로 지역 사회와 연계된 맥주 문화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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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리그
밀워키가 속했던 아메리칸 리그는 원래 맥주와 위스키 리그

한편, 밀워키 브루어스 팀 자체의 역사도 흥미롭다. 브루어스는 원래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었으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창단으로 인해 내셔널리그로 이동했다. 팬들에게는 혼란이 있었지만, 현재 내셔널리그 팀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은 팀과 도시의 산업적, 문화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차이는 단순한 규칙 차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메리칸리그는 대중적 재미와 관람 경험을 중시하며 경기장에서 맥주와 위스키를 즐기는 문화를 적극 받아들였다. 그래서 밀워키가 속했던 아메리칸 리그는 원래 맥주와 위스키 리그라고도 불렸다.


반면 내셔널리그는 전통적 규칙과 청교도적 가치를 강조하며, 투수가 직접 타석에 서는 방식을 유지했다. 즉 투수가 타석에 서면 경기의 맥락이 끊기니 그러한 것을 없애기 위해 DH란 특별한 제도를 아메리칸 리그가 먼저 만든 것이었다. 점수가 나야 흥이 나고, 그런 상황속에서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메리칸 리그의 뿌리이기도 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DH(지명타자) 제도와 같은 규칙에도 반영되었다.


오타니룰

2022년, 결과적으로 내셔널리그도 전면 DH 제도를 도입하면서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더라도 지명타자를 통해 타격을 대체하거나 투수 자신이 타자로 경기에 계속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오타니 룰(Ohtani Rule)’이 신설되었다. 이 룰은 선발 투수가 타순(DH 포함)에 들어 있을 경우, 마운드에서 강판되더라도 지명타자 자격을 유지하며 경기에 계속 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칙이다. DH 제도 도입과 오타니 룰의 결합은 현대 야구에서 오타니 선수와 같은 이도류 활약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제도적 기반이다.


결국 맥주와 야구의 결합은 단순한 음주와 경기의 결합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규칙적 배경이 얽힌 산물이다. 경기 관람과 함께 맥주를 즐기는 미국 문화는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규칙과도 맞물려 발전해왔으며, 오늘날 팬들은 전략, 재미, 문화적 경험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포천 막걸리 메이커스, 안동소주 마스터즈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이러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언젠가 한국 전통주 장인의 이름을 담은 프로야구팀이 탄생할 수 있다. 포천 막걸리 메이커스, 안동소주 마스터와 같은 팀은 지역과 역사, 장인의 정신과 문화적 가치까지 담아내며, 팬들에게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오타니의 경기를 통해 우리는 야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고, 밀워키 브루어스를 통해 산업과 문화가 스포츠와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맥주와 야구, 역사와 문화, 규칙과 제도의 진화, 그리고 선수와 팬이 얽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한 시대의 문화적 산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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