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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젠슨황은 왜 하쿠슈 위스키 25년을 선물했나?

위스키 선물에 담긴 숨겨진 스토리

by 명욱
학슈위스키.jpg 하크슈 위스키를 들고 있는 젠슨황. 출처 tv조선

엔비디아 젠슨 황은 왜 하크슈 위스키를 선물했을까


이번 에이펙(APEC)에서는 여러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열린 이벤트가 특히 주목을 끌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전자의 이재용,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가 치킨 프랜차이즈 ‘깐부’라는 점도 상징적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깐부’는 “이제 우리는 한편이다, 함께 간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번 치킨 회동은 “앞으로의 동반자 관계 선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흥미를 더한 것은 젠슨 황이 두 회장에게 준비한 선물이다. 1병에 약 700만 원에 이르는 일본 야마나시현의 하쿠슈 증류소가 만든 하쿠슈 25년이었다. 공개석상에서 고가 위스키를 선물한 행위 자체가 주목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라왔다.

“왜 수많은 고급 위스키 중에서 하쿠슈였을까?”

하쿠슈는 산토리 그룹의 두 번째 증류소다. 야마자키 증류소가 교토 인근에 있어 도시 접근성이 높다면, 하쿠슈 증류소는 야마나시현 남알프스 산맥 3,000m급 고산지대에 둘러싸인 숲 속, 해발 약 700m의 자연 한가운데 위치한다. 즉 야마자키가 “문명의 중심”이라면, 하쿠슈는 “자연의 한가운데”에 있는 증류소다.


야마자키 증류소는 초기에 오사카·교토권 물류 중심을 고려해 설립되었다. 당시 초대 공장장 타케츠루 마사타카(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는 기후가 스코틀랜드와 너무 달랐다는 이유로 야마자키 설립에 반대했고, 결국 10년 근무 후 스코틀랜드에 가까운 기후를 가진 홋카이도 요이치로 떠난다. 그 결과 닛카 위스키가 탄생한다.


산토리도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환경에서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2 공장을 건립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야마자키 하나로 운영을 이어가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위스키 수요가 폭발하자 계획을 본격화했다. 약 10년간의 조사와 준비 끝에 1973년, 산토리의 오랜 숙원이었던 ‘자연 속 증류소’가 완공 되었고, 그것이 바로 하쿠슈 증류소다.


132820390.1.jpg 싱글 몰트 위스키 하쿠슈 25년. 하쿠슈는 야마나시현 지역 이름이다. 가격은 약 700만 원대


따라서 하쿠슈 위스키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야마자키는 55년 숙성 제품도 있지만, 하쿠슈의 가장 긴 숙성 연도는 현재 25년이다. 오히려 이 짧은 역사 속에서 하쿠슈 25년이 증류소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은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자연과 함께를 추구하는 하쿠슈 증류소

하쿠슈가 추구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자연과 함께.”를 가장 실천하고 있는 곳이다. 실제로 증류소 주변에는 ‘새의 길(bird sanctuary)’이 있어 매년 서식 동물을 조사하며 단 한 종도 사라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그래서 숲을 상징하는 초록색 보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쿠슈 증류소의 도감도. 숲 속에 위치한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견학 및 투어도 가능한데, 규모가 커서 도중에 버스도 타야한다. 위스키에 대한 개론은 물론 증류소 내부 깊게 탐방이 가능하다. 그래서 원액 제조를 위한 발효조, 증류기, 그리고 거대한 오크통 숙성공간까지 모두 탐방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하크슈 위스키를 통한 칵테일 수업이 진행되며, 투어 후에는 옵션으로 한 잔 가격은 약 2만 2천 엔, 우리 돈으로 20만 원이 넘는다. 다만 방문객이 너무 많아 견학은 홈페이지 예약을 통한 추첨제로 진행되고 있다. 수십대일이상의 경쟁율을 보이고 있어서 이곳을 견학간다는 것이 마치 살짝 복권당첨같은 그런 상황이기도 하다.


하크슈 위스키는 기존 산토리 히비키 및 야마자키 등의 다른 일본 위스키와 맛이 사뭇다르다. 히비키 및 야마자키는 대체로 피트(peat) 향을 약하게 사용해 부드럽고 편한 음용을 지향하는데, 하쿠슈는 상대적으로 더 강한 피트 몰트를 사용한다. 즉 일본식 편안함보다는 스카치식 질감에 가까운 방향성을 택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연수(水質)가 워낙 부드러워 스모키한 향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공존하는 독특한 스타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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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스키 산업도 흥미롭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 위스키는 “가볍고 편한 위스키”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바에 남은 위스키를 맡겨두는 ‘킵 문화’, 물이나 얼음을 타서 음식과 함께 마시는 스타일 등이 모두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 하지만 그 문화가 정점을 찍은 후 고도수 부담과 고급 소주와의 경쟁, 그리고 버블 붕괴가 겹치며 산업이 급격히 위축된다. 이때 산토리가 선택한 전략이 숙성과 프리미엄 제품 개발이었다. 야마자키, 히비키, 하쿠슈 같은 현재 일본 대표 위스키들이 이 불황기 전략의 산물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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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통 숙성고와 증류기
그렇다면 젠슨 황은 왜 하쿠슈 25년을 선물했을까?

그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다. 선물이 직접적으로 선정된 과정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은 있다.


하쿠슈가 상징하는 것 — 숲, 자연, 깨끗한 물, 느린 시간, 숙성, 진정성.

그리고, 25년 이상 묵혀야만 완성되는 위스키가 가지고 있는 시간성.

자연 속에서 생태계를 지키며 운영되는 증류소가 드러내는 청정성과 신뢰성.

그리고 단기간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함께 가는 관계’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물론 젠슨 황이 정말 그것을 의도했는지, 혹은 단순히 비서진이 준비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석 그 자체가 사회에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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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란 본질적으로 목적 + 의미 + 스토리가 결합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이번 위스키 선물은 실제 의도가 무엇이었든 결국 ‘파트너십’과 ‘시간’과 ‘신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해석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회자되고 있다.


결국 그가 건넨 것은 시간의 깊이를 품은 위스키이자, 숲의 맑음을 상징하는 위스키였다. 깨끗한 관계는 과장하지 않아도 스스로 오래 지속된다는 믿음을, 그는 아마 그 한 병에 담아 보낸 것이 아닐까.


written by 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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