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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teOE May 02. 2019

Hello, There

Netflix <YOU> : 너의 모든 것 


 살아있는 칠면조의 목을 내려치니 작은 분수처럼 피가 솟아오른다.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등장한 선혈 가득한 장면에 나는 눈을 빛내며 메모를 시작한다. 무심한 연출 속에 감춰진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복선. 구도는 마치 사진처럼 느리고, 전개는 불친절할 만큼 빠르다. 양극단이 빚어내는 멋진 불협화음. 이것은 철학적으로 무한한 깊이가 있는 놀라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약 7년 전, 대학 과제 소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관람했던 [푸른 수염]에 관한 내 감상문의 일부다. 


 사실 위의 문장들은 전부 의미 없는 수식에 불과하다. 당시 나는 내가 쓴 문장의 절반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작품 속에 당최 무슨 철학이 있는지 내가 알 게 뭔가. 그러나 고집을 부려 과제 작품으로 밀어붙였다. 굳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뻔하다. 있어 보이니까. 


 고백하자면, 당시 심각한 냉소주의에 빠져있던 나는 암호 같은 문장을 남발하며 동기 학생들을 비웃고 싶었다. 이렇게 세상을 달관한듯한 문장을 날려주면 그들은 움찔하고 나는 신비로워 보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인정받기 위해 남을 비웃으면서도, 도리어 내가 평가받긴 싫다는 비뚤어진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야심 차게 제출한 과제는 평범치의 학점을 받았고, 내게는 그것이 꽤나 충격이었다. 나 역시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고통스럽고 지난한 시행착오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부끄러운 과거를 당신에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가 있다. 당시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정을 갈구하면서도 멈춰진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 구원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스스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이 당신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도움을 줄 것이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가련한 공주. 마리오네트를 갈망하는 푸른 수염. 혹은 가식과 허영의 향연. 현실 속에서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애타는 기싸움. 다양한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번 작품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10화에 걸쳐 녹아난 인간 군상들이 금지된 당신의 민낯을 향한 마지막 열쇠를 던져줄 것이다. 




Netflix <YOU> 너의 모든 것

주인공은 작가 지망생이다. 그녀는 다양한 수식어 뒤에 숨어 순조롭게 삶을 유지하는 기술에 탁월하다. 화려하지만 내면은 깡통뿐인 남자 친구의 뒤에, 부유하지만 자신을 애완견처럼 여기는 무례한 친구의 뒤에 기대는 겁 많은 악동이다. 안전한 환경과 그럴듯한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는 그녀. 취향은 사라지고 눈치만 늘어가는 기형적인 삶 속에서, 그녀는 조금씩 자신을 죽여간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영혼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녀의 세계. 그녀의 불완전함은 남자에게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고 이내 끔찍한 집착으로 변질된다. 마침내 그가 건넨 손을 그녀가 잡아드는 순간 파국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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