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메뉴는 '엄마표 보쌈'
집마다 테이블 위를 대표하는 밥상 메뉴, '시그니처'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 집은 '엄마표 보쌈'이 그렇다.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엄마와 가족들의 취향이 묻어져 단백질 보충이 필요할 때 주로 구이보다는 돼지고기를 삶아서 보쌈으로 먹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접하면 조금은 질리거나 물리기 마련인데 나에게 보쌈은 그런 존재다. 맛있지만 조금은 식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쌈'을 우리 집 테이블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으로 언급한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로 흩어져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저녁 여덟 시쯤 한 테이블에 모여 저녁을 먹는 건 지친 기력을 보충시키고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일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주방장인 엄마가 신경 써서 식사하고 싶은 날 먹는 메뉴였다. 요리를 하느라 수고한 엄마에게 쌈 하나를 건네고, 늦게 도착한 식구에게 다른 한 쌈을 싸서 급히 입으로 넣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만의 정이었다.
우리 집 시그니처만의 특별한 점은 보쌈을 압력솥에 찐다는 것인데, 짧은 시간 안에 한층 더 부드럽게 익혀지는 특징이 있다. 조리법을 처음 바꿨을 때 고기가 부드럽고 너무 맛있어서 가족 모두 주방장인 엄마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요리 당장 판매해도 되겠다~!', ''000의 보쌈' 가게 내야겠는걸?' 그 후로 테이블 위를 더 자주 채운 요리가 된 거 같기도 하다. (웃음)
아무튼 내륙 지방에 살아서인지 바다 냄새가 가득한 생선의 비린 맛은 어딘가 불호이기도 하고 기름기가 너무 많은 요리도 썩 내키지 않으니 담백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야말로 우리 집 식탁에 어울릴만했다. 시험기간이 끝나 맛있는 걸 먹고 싶었던 학생 신분 때나, 유난히 하루가 길어서 기력 보충이 필요했던 직장인 시절을 보낼 때도 언제나 함께한 시그니처 음식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엄마의 사랑이 깃들어 맛있고 재밌는 추억의 음식이 되지 않았을까, 여러분의 테이블 시그니처 음식은 무엇인가요? : )
이날은 특별히 마늘보쌈을 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