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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7. 2021

작은 습관 하나 새겨지길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잊지만 않아도 많은 것이 변한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넌다. 열차가 당산역을 출발하면 창밖으로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처음엔 한 시간 남짓의 출퇴근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되겠지 싶었다. 집 앞에서만 맴돈 지 십여 년 만에 매일 전철을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은 내 삶에 변화도 줄 것이며 활력도 될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출퇴근한 지 십오 개월째. 이제 나는 전철에서 폰을 손에 들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어떤 때는 열차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줄도 모르고 폰 안의 세상에 몰입할 때도 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려 할 때면 마주 보이는 좌석에 앉은 여섯 사람 중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처럼 나도 책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요 며칠 한강을 지날 때 나는 언제까지 이 다리를 지나가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출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으면서부터일까. 지금이야 크게 별일이 없으면 계속 다니겠지 싶지만 언제 변덕이 생겨 그만두고 싶어질지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고맙고 잔잔하게 지나가는 업무시간 덕분에 조금은 더 역동적인 취미생활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싫증 날 수도 있고 어떤 일로 인해 고용인이 나를 해고할 수도 있다. 불안이라기보다는 언젠가 있을 마지막을 막연히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처럼.


출근할 때면 습관처럼 책을 가방에 넣는다. 읽어야 할 책이 밀려 있을 때는 두 권을 챙겨 넣기도 한다. 하루도 책을 안 들고 출근하는 날이 없지만 전철에서 책을 꺼내지 않는 날이 늘면서 종종 책을 꺼내놓고 퇴근할 때가 있다. 출근해 꺼내 놓은 책을 한 장도 펼쳐보지 못하고 퇴근하는 날에는 집에 가서도 읽을 짬이 없을 거란 생각에 더 그렇다. 점차 금방 내리니까, 서서 복잡한데 뭘, 하는 생각까지 자리를 잡아간다.  출근 초반에 두꺼운 벽돌 책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 많고 좁은 틈에 서서도 꿋꿋이 읽던 열정은 사라졌다. 무슨 일이든 열정이 금방 사라진다는 기질인가 고질병인가를 갖고 있는 터라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그래도 시간을 쪼개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집념 같은 것이 사라진 것은 조금 아쉽다. 마음이 풀어진 것인지 행동이 굼떠진 것인지. 마음이 떠나면 행동도 멀어지게 마련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애써 잡았던 글쓰기 습관은 게으름으로 한두 차례 미루다가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길들이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속절없이 멀어진 것이 황당할 정도지만 몸은 편안한 쪽으로 자꾸만 핑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계하지 못한 내 탓이다.




이렇게 출퇴근길이 습관처럼 길들여졌어도 나는 언젠가 더 편안한 것을 좇으려 또 어떤 핑계를 찾아낼지 모른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감사한 마음보다 지친 마음이 커질 때 나는 이 출근 전철을 타지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변치 않고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자던 결심을 잊지 않길, 작은 습관 하나 놓치지 않고 새겨지길 마음 깊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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