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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0. 2021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

늘 하던 대로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기계에 갖다 댔다. 아무 반응이 없다. 어? 왜 안 되지? 약간 당황했다. 다행히 뒤에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폰케이스 뒤에 꽂혀 있는 카드를 꺼내려고 했다. 손이 미끄러졌다. 얼마 전 케이스를 바꿨다. 처음에도 카드를 넣다 빼는 것이 뻑뻑해서 불편했다. 그래서 신경 써서 카드의 글자 요철이 있는 부분을 바깥쪽으로 꽂았는데. 어제 점심에 김밥을 사고 아무 생각 없이 꽂아 넣은 카드가 반대로 들어갔던가 보다. 나는 지하철 출입 개찰구에서 뒤로 물러 나왔다. 뒤로 빠져서 카드를 꺼내는데 몇 번이나 손이 미끄러진다. 조금 더 당황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한숨이 나왔다. 이거 오늘 일진이, 생각하다가 멈췄다. 내가 생각하면 그런 게 딸려 올 것 같았다.


다시 찬찬히 카드를 꺼낸다. 어떻게 해도 안 될 것 같던 카드가 쓱 하고 빠져나왔다. 다시 아까 기계 앞으로 가서 카드를 갖다 댔다. 또 아무 반응이 없다. 앞으로도 대보고 뒤로도 대 보지만 여전히. 이거 맛이 갔네. 내 머리는 카드에 대고 한 소리였지만 내 눈은 옆 칸을 바라보았고 다리는 반사적으로 옆 기계로 움직였다. 카드를 가져다 대니 냉큼 삑, 하는 소리가 난다. 아, 저 기계가 맛이 간 거군. 첨부터 그럼 옆 칸으로 가서 댔더라면 됐겠지? 전철이 좀 멀리 있어서, 더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갖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전철 플랫폼을 향해 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누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언제나 누구에게 보여질 모습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나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기계에 반응이 없어 카드를 꺼내려고 우왕좌왕할 때부터 나는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살폈다. 혹시나 내가 어떤 특징적인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다. 언제 생긴 버릇일까. 습관화되었던 것을 이제야 인식하게 된 걸까. 언제 어디서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습관은 내 생활 방식으로 굳혀져 버렸고 거기에 지배당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 마리오네트와 같은 내 모습이 언젠가부터 보였다. 나를 조종하는 것은 누구일까? 내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은 누구의 것일까? 무엇보다도 큰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지배하고 있는 기준은, 이제껏 벗어나지 못한 내 어린 날의 도. 덕. 인 걸까. 옳다고 믿어온 것들, 체화되어서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아직도 나를 묶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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