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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Oct 22. 2021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내 발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발씩 번갈아 앞으로 내디뎠다. 휘청. 내가 밟고 있는 것이 계단이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평지인지 계단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기계처럼 앞으로 움직이는 발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그걸 깨달음과 동시에 위치 감각이 깨어나 어지러움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계단의 높이로 올려놓던 발은 이제야 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차린 듯 머리의 명령을 기다릴 새 없이  멈칫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몸이 갑자기 정지하자 아주 약간 흔들렸다. 오른발은 왼발보다 하나 위칸에 얹은 채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까.

매일 출퇴근하며 전철을 탈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린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것이 내리막 계단인지 오르막 계단인지 굳이 인식하지 않는다. 그만큼 익숙해진 탓이다. 내 앞에 놓인 길을  늘 하던대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갈 뿐이다. 그러다 잠시 나의 위치를, 바닥으로부터의 높이를 가늠하는 순간이 오면 현기증이 난다.  속을 헤매다 현실에 돌아오는 찰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지만 요즘 많이 흐트러졌다. 듣고 싶은 노래도 많고 보고 싶은 영상도 많다. 읽을 책도 써야 할 글도. 설거지할 때 설거지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려야 하는데 시간을 아낀다는 핑계로 다른 일을 동시에 한다. 설거지하면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 이어폰을 귀에 끼우고 노래를 듣거나 영상을 보면서. 계단을 오르면서도 스마트폰에 눈과 머리를 뺏기기 일쑤다. 그게 습관이 되니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머리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느 순간 나를 자각할 때, 휘청거리는 것은 바로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경고가 아닐까.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저 멀리 보내버린 정신을 몸으로 끌어와 지금에 머물라고.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몸뚱이를 직접 통제하라고. 이러다 손도 발도 따로따로 제멋대로 놀기 시작하면 그때 너는 어디에 있으려느냐고.


요즘 《열자》를 읽는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노자, 장자와 같은 계열의 도가 사상가다. 본성을 따르되 자신 안에 머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며 살라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 떨어지는 것들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즉석식품만 먹고 자판기에서 금방 나오는 상품에 익숙해지니 멀리 보는 지혜 같은 건 사라져 간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 바로 내 안에 고요히 머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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