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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Oct 18. 2021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의 감각

퇴근길, 하늘빛이 심상치 않다. 최근 이상 기온 때문인지 하늘이 구름 맛집이라는 얘길 들었다. 자주 하늘을 보지 못한  탓인지 하늘이 넓게 보이지 않는 빌딩 숲만 다녀서 그런지 체감은 할 수 없었다. 이날도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건물들 사이로 좁은 하늘만 보일 뿐이었는데 붉게 타오르는 강렬함이 내 눈을 잡아끌었다. 하늘을 가득 물들인 붉은색은 여느 날과는 달랐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가을답지 않게 뚝 떨어진 기온 때문일까? 오랜만에 보는 짙은 붉음에 놀라고 붙잡고 싶었다. 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뛰어라도 가 보고 싶지만 방금 산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던 터라 그럴 수 없었다. 마침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이 서쪽인가 보다.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하늘을 살폈다. 버스에서 내려 하늘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나무와 건물에 가려 아까보다 시야가 좁아졌다. 아, 어떡하지. 나는 집으로 뛰어들어가며 일찍 집에 와 있던 남편에게 소리쳤다.


- 빨랑 옷 입어!


남편은 어리둥절해서 나를 본다.


- 하늘 사진 찍어야 돼! 하늘이 예술이야!


다짜고짜 하늘을 찍는다니, 그러면서 옷을 입으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 서쪽 하늘이 잘 보이는 데가 어딜까?


남편은 이 동네 토박이지만 그런 데는 모른단다. 지체하면 하늘이 더 어두워질 테고. 우선 차를 타고 서쪽 방향으로 달렸다. 남편은 아이들 어릴 때 자주 올라가서 보았던 전철길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어떠냐고 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 굳이 차를 타고 갈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도 걷는 것보단 빠르리라. 차에서 내려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랐다. 아, 아까 내가 본 하늘과 다르다. 불타오르던 하늘은 지나갔다. 붉은 하늘에 떼 지어 있던 양 떼들도 사라졌다. 이미 집집마다 불을 켰다. 개와 늑대의 시간, 마법의 시간. 찰나와도 같구나. 해는 금방 져버리고 아름답던 한 순간은 지나갔다. 근처 산이라도 가려했던 내 생각은 어리석었다. 도착하기도 전에 하늘은 어두워졌을 것이다. 내가 짧다고 생각했던 시간의 감각은 터무니없었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한 것, 오늘도 하나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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