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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Feb 28. 2022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

졸업식과 입학식을 맞으며

방학식이 언제냐고 묻는 나에게 작은 아이는 무심하게 월요일이라고 답했다. 큰 아이는 금요일. 나는 금요일 아침이라는 걸 기억했다가 큰 아이의 등굣길에 이제 고2도 마지막이네,라고 잘 다녀오라 인사했다. 잠시 후 작은 아이에게인사를 하고 문을 닫자마자 이제 중3의 마지막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3학년의 마지막이면 졸업이잖아? 나는 다급히 현관문을 열고 아직 문 앞에 서 있던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월요일이 졸업이야? 방학식이 아니고? 네. 3학년이니까 방학식이 졸업식이죠. 나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졸업이 뭐 대수라고, 하는 표정의 아이가 낯설기도 하고 약간은 서운하기도 했다. 졸업 앨범 얘기가 오갔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나.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는 졸업식이 다가오면 엄마 아빠가 갈 수 있는 시간인지 확인하고 미리 일정을 빼놓는다던가 하는 과정이 있었다. 큰 아이 때는 중학교 졸업식에도 그렇게 했는데. 코로나 시국이 된 뒤로 어떤 일정에도 부모가 함께 참석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리 얘기라도 해주지. 다행히 월요일은 내가 갈 수 있는 요일이다. 그런데 아이는 학생만 가는 거 같다고 했다. 졸업식에 학생을 제외하고 부모님이든 누구든 아예 참석할 수 없다고. 이렇게 등교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으로 졸업까지 맞게 되다니. 2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학교에 체육관을 짓는다기에 졸업식은 거기서 할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졸업식날 혼자서 꽃다발도 없이 등교했다. 꽃다발이라도 사서 들려 보낼까 했지만 그걸 들고 가란다고 그랬을 리 없다. 교복 대신 편안한 체육복을 입고 등교해도 된다고 바뀐 뒤아이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가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단호하게 싫단다. 졸업식날까지도 체육복이라니. 이제 영영 중학교 교복 입을 일이 없는데, 오늘만이라도 입을 걸 그랬다 하니 극구 사양이다.

평소에도 사진 찍는 것을 질색해서 사진도 한 장 없을 것인데 그것을 헤아린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사진을 한두 장 찍어서 톡으로 보내주셨다. 사진을 보니 어른처럼 코트를 차려입고 온 아이도, 꽃다발을 들고 온 아이도 있었다. 우리 집 아이처럼 체육복을 입고 온 아이도 있고. 다행이라 해야 할지. 누구의 무심함이라 보기엔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 마음을 다스려 본다.


졸업식인데 학교에는 함께 가지 못하니 해야 하나. 그냥 보내긴 아쉽고 함께 점심이라도 밖에서 먹을까. 졸업식 날에는 짜장면을 먹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옛날 사람만이 추억하는 옛날 일 같다. 코로나 이후로 못 가 본 뷔페에 가기로 했다. 2년 전 큰 아이 졸업식 때 간 뒤로 처음이다. 아이들이 귀찮다 할까 걱정했지만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뷔페에는 가족끼리 온 이들도 있었지만 또래 아이들끼리 온 경우보였다. 엄마랑 가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도 같다. 이제 엄마랑 어디 다니는 것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 수 있다. 아빠 없이 버스 타고 하는 외출이 번거로웠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밥도 먹고 나간 김에 가방도 사자는 말에 아이들이 선뜻 나섰지만 다음에 외출을 제안하면 아이들이 따라나서 줄지 괜스레 조심스럽고 걱정이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식도 부모님이 참석하지 않는다. 큰 아이 때는 코로나 때문에 등교가 연기되고 연기되다가 그냥 온라인으로 입학식을 했다. 올해 작은 아이 입학식은 정상 등교로 진행되지만 학생 외에 참석할 수 있다는 말은 없다. 입학식은 중학교 때도 참석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 같지만 중학교 졸업식을 못 갔더니 입학식이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아 더욱 서운했다. 영화 '기적'에서처럼 학교 운동장에 줄 서서 하는 입학식 풍경은 이제 사라지려나 보다. 아이가 입학하는 학교에 버스 타고 가 본 적은 없어서 제 아빠와 함께 버스를 타고 다녀온 것이 입학 준비의 끝이었다.


 아이들의 삶에 내가 필요한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 예정된 일이지만 코로나로 더욱 가속화된 것도 같다. 내가 인정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조금씩 나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게다가 멀어진다는 것이 꼭 나쁜 뜻만은 아니다. 각자 독립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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