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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Sep 27. 2021

아이의 학교에서 만난 순간

아이의 재학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 직장에서 장학금 명목으로 약간의 지원금을 줄 모양이다. 작년인가 성적 장학금을 신청하라고 해서 서류를 냈는데 받지 못했다. 남편의 근속 연수에 밀린 것인지 성적 장학금이니까 그에 걸맞은 성적이라야 받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다 주려나.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중학교 다닐 때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교육비가 추가로 든다고 했다. 분기별로 내는 등록금도 생각보다 큰 비용이었다. 거기에 교과서비와 급식비. 저녁까지 먹고 공부를 한다면 급식비도 두 배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코로나로 학교에 제대로 가지 않으니 저녁 급식비는 필요가 없어졌고 점심 급식은 무상이 되었다. 거기다 올해부터는 등록금도 도에서 지원해주니 올해는 등록금 깜박하고 안 내는 걱정까지 덜었다. 그런 형편이니 따로 학교에 내는 돈은 없지만 그래도 뭐 장학금이라니까, 받으면 좋으니까.


서류를 낼모레까지 가져가야 한다는데 아이는 그동안 원격수업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아이의 학교에 다녀와야 했다. 남편이 쉬는 날 해도 될 터인데 그런 일에 남편은 꼭 나를 앞장 세운다. 남에게 어떤 요청이나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못 견뎌한다. 못 견디는 게 아니라 못한다. 언제쯤 그런 일들을 혼자 하게 될까. 지금은 대신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미루는 걸까. 우리 아이들은 자라서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본인이 아닌 보호자가 서류를 떼는 것이니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서류를 물었다. 등본 등 학생 관련된 서류와 보호자의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나는 아이에게 학번을 다시 물은 후 남편과 함께 학교로 향했다. 몇 번이나 물었던 학번도 이제는 입에 붙지 않는다. 나이 탓을 해야 할지, 무관심이라 해야 할지.



아이가 입학하고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학교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아이가 이제껏 등교한 날도 손꼽아 보면 며칠 안 될 것이니 학부모인 나야 무리도 아니다. 그래도 아이  중학교까지는 각종 행사에 따라다니면서 자주 참여했었는데. 코로나 영향도 있겠지만 너무 급격하게 무심해진 건가 싶기도 하다. 교문으로 들어서니 바닥에 블록을 새로 깔았는지 아무렇게나 뿌려둔 모래가 하얗게 먼지를 일으킬 것처럼 어수선하다. 학교는 너무나 조용했다. 수업 중이니 워낙 조용할 것이겠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나오는 것은 아니라 비어 있는 교실도 많을 것이다. 고즈넉한 학교가 왠지 쓸쓸하다. 주인 없는 정원처럼 웃자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앞 쪽 구령대( 아직도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또 어떤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걸까?)를 보며 걸어가니 운동장 쪽으로 하늘이 탁 트였다. 집 주변은 온통 건물들로 가로막힌 좁은 하늘만 보이는데 학교에 오면 너른 하늘을 볼 수 있다니 참 좋구나,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게 어떤 복인 줄 모르겠지만. 심지어 손에 든 스마트폰만 바라보느라 이렇게 하늘이 넓게 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도 많으리라.

처음 찾는 곳이지만 학교 행정실은 주로 중앙 현관 주변에 있으니 건물의 가운데 문을 찾아 들어갔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 지나는 길이 바닥에 노란 선으로 그려져 있고 커다란 모니터 체온 감지기가 놓여 있었다. 아침이면 그 앞에 줄을 서서 들어갈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행정실에 들어가 민원 신청서를 쓴다. 아이의 이름과 주민번호, 내 이름과 주민번호. 아이의 학번은 필요 없었다. 아이의 주민번호를 적다가 멈칫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쓰는 빈도가 많지 않았어도 주민번호가 선명하게 떠올랐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쓰려고 해선가. 술술 쓰던 번호를 생각하는데 '로딩 중'이 뜨고 천천히 동그라미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직 내 번호는 선명하니 다행이다.

서류를 떼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서류를 떼러 온 하루가 기록된다. 아이는 나중에 이 학교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3년을 매일같이 지긋지긋하게 다녀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 터인데. 그것이 삶을 살아가면서 오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는데. 졸업할 때까지도 학교와 데면데면하지나 않을까, 인생의 3년을 보내는 학교와 좀 더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된 지금이 새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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