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는 오랜만이다. 요즘은 어느 병원엘 가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 사흘이 멀다 하고 콧물약을 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병원이 그리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계시던 동네 소아과에서는 청진기로 받는 진료와 입 안을 눈으로 살펴보거나 손으로 배를 여기저기 눌러보는 것이 다였다. 커다란 기계나 소음 같은 차가운 느낌은 없었다. 어쩌다 정형외과에 가도 엑스레이가 가장 번거로운 과정이었다. 내과의 내시경이나 산부인과의 진료 의자는 좀 불편했지만 지금처럼 공장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겨우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최근 병원에서 겁을 먹었던 것은 어깨 통증으로 도수 치료를 받는 곳에서였다. 처음 느낌은 헬스장 같았다. TV로만 봤지 헬스장에 직접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갖가지 커다란 기구들이 놓인 그곳의 이미지가 그렇게 이어진 것이다. 널찍한 공간에 띄엄띄엄 놓인 베드마다 환자와 치료사가 쌍을 이뤄 마사지와 비슷한 '치료'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근육 여기저기를 풀어주던 치료사는 마지막 단계로 나에게 어떤 기구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기구는 다리를 벌리고 올라가야 해서 여성이 거부감을 느끼기 충분하게 생겼는데 그것과 비슷했다. 왜 굳이 이렇게 생긴 걸까 궁금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머리와 이마를 고정하고 목을 위로 잡아 빼는 것 같은 동작이 시작되어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예전 흑백영화에서 어떤 사람을 고문하는 모습으로 본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내게는 호러영화가 따로 없었다. 다음에 갔을 때 그 기계에 올라가라고 하면 거절할 참이었는데 마침 코로나가 퍼져 나가던 시기라서 그 핑계로 치료를 그만두었다.
이번에는 한동안 잠잠하던 무릎에 통증이 왔다. 코로나 시국 이후 처음 정형외과에 왔다. 어깨가 아파서 갔던 병원이 아니라 동네의 작은 병원이었다. 오륙 년 전 무릎이 아파 다니기도 했었다. 오랜만에 간 병원은 위치만 그대로일 뿐 명칭도 의사도 시설도 다 바뀌어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무릎의 염증으로 보인다면서 약을 처방해 주고 물리치료를 받으란다. 나는 예전의 간단하던 물리치료를 생각했다. 온찜질과 저주파 치료와 적외선 쬐는 걸로 끝, 이라 기억한다. 간호사가 저주파 기계를 부착해 주거나 찜질팩을 올리는 것이 다였다. 이제는 통증 치료를 위한 병원임을 명칭에서부터 표방하고 있어서 그런지 각종 기구들이 들어와 있었다. 진료실보다 훨씬 큰 공간이 도수치료를 위해 할애되어 있다. 의사 수보다 몇 배 많은 수의 치료사들이 있었다.
나는 간단히 생각하고 물리 치료실로 갔다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무슨 실 무슨 실 구획으로 나뉜 여러 개의 공간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공장의 기계 같았다. 물리치료실은 보통 각각 일인용 베드를 두고 커튼으로 가리게 되어 있는데 커튼도 없고 가리개도 없이 세 개의 침대가 놓여 있고 할머니 세 분이 누워서 뭔가를 받고 있었다.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안내하는 작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온찜질. 그 후에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치료사는 TV광고에서 본 적 있는 마사지기를 가져왔다. 다리 한쪽씩 넣는 주머니로 공기를 불어넣어 종아리 마사지를 해주는 기구였다. 사람이 일일이 마사지를 해 줄 수 없으니 기구를 사용하는구나, 사람의 손을 대체하니 편리한가 따위의 생각을 하는데 공기가 팽창해서 다리를 조이는 강도가 너무 세다. 이런 마사지가 나는 별로다. 언젠가 전신 안마의자에 앉았다가 종아리부터 꽉 조여 오는 의자가 마치 나를 잡아먹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안마의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마사지가 끝나면 저주파 이온 치료기. 끝나고 나오자 아까 들어오면서 보았던 침대로 가란다. 일명 물침대라고 부르는 그것은 누우면 물속에 있는 것처럼 소리까지 생생하다. 내가 누운 침대 시트 아래에서 물을 쏘아 올려 전신을 마사지 해주나 보다. 나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물속에 누워 미래를 보는 데 이용되던 쌍둥이를 떠올렸다. 그들은 물속에서 이런 소리를 하루 종일 들었겠구나. 그런데 이게 좋기는 한 건가. 몸이 시원해지는 것은 모르겠고 내내 영문을 모르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물이 잠잠해지길래 끝이 난 줄 알고 나는 일어나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시 도수 치료실로 가라고 했다. 할머니들이 목욕탕에서 쓰는 것 같은 옷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다니기에 그게 뭔가 했는데 자기 겉옷을 넣은 바구니였다. 작은 것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병원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가운데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사람들이 차례차례 다음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옷 바구니를 받아 들고 따라 들어가니 어깨가 아파서 도수치료받던 곳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때보다는 약간 촘촘하게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치료사가 뭉친 근육을 손으로 풀어준다. 내 옆에 누운 할머니 환자에게 치료사는 계속해서 살가운 말을 건넨다. 나는 낯선 사람의 낯선 친절이 또 어색해서 조용히 치료대 위에 누워 있었다. 이어서 충격파 요법에 자기장 치료까지. 간단한 물리치료를 생각했는데 각 과정에 기다리는 시간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온갖 기구와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 갖은 진동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픈 곳은 한 곳인데 옷 바구니까지 챙겨 여기저기 돌아다보니 내가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진짜 심한 환자인지 헷갈렸다. 무릎이 아파서 왔는데 다른 곳이 아픈 환자와 거의 똑같은 코스로 돌게 되는 물리치료 과정이라니, 너무 과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 많은 것 중에 선택할 수는 없는지, 느긋하게 모든 치료를 다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진료를 받을 때는 한 번 물어봐야지. 진료보다 물리치료에 중심을 둔 것이 비단 정형외과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첨단의 장비를 통해 건강 관리를 받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로서 공장이 돌아가게 하는 부품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필요보다 커져 버린 차가운 기계음으로 가득한 병원이 점점 더 낯설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