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lle qui est morte
Un confinement ; n. 격리, 고립.
어느 날 저녁 8시. 프랑스 대통령 에마뉴엘 마크롱은 국민 대담화를 하였다. 요즘의 가장 큰 이슈인 코로나 바이러스였으며 이에 따른 외출 통제령에 대한 발표였다. 어떻게 보면 불가피한 조치였다. 당장 내 눈 앞에서 펼쳐지지 않는 사실이기에 믿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믿으면서도 당장의 행복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꺼내고 싶은 것인지는 몰라도 파리의 시민들은 햇볕 좋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어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을 보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인터넷 상에서 떠돌던 괴담은 결국 실현되었고 3월 17일 화요일 정오를 기준으로 파리는 고립된 채 고요한 도시가 되어갔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사토코는 나에게 '도시는 죽었다'라는 뜻의 'La ville qui est morte' 한 문장을 메시지로 보내왔다. 여러 가지 의역이 가능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대로 직역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하다. 오늘은 외출 통제가 시작된 지 오일째 되는 날이지만 실직적으로 나에게는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장을 보러 집 앞 슈퍼를 나선 것을 제외하곤 금요일 저녁, 퇴근 이후로 나는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횟수로는 여덟의 날이 지났다.
통제령이 실행되는 아침. 슈퍼에는 어마어마한 줄이 늘어졌다. 평소 고요하지는 않지만 유독 마켓이 많은 동네이기에 어느 한 슈퍼에 사람이 몰리는 일은 절대 없었는데 이 날의 아침은 그러하였다. 나는 미리 15일 정도를 생각하고 음식을 사두었기에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커피를 사두는 일을 잊어 그나마 한적한 곳으로 가 캔커피 5-6개 정도를 구입해 집으로 들고 왔다.
갑작스러운 조치에 회사에서도 재택근무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바빠졌다. 나 또한 평소에 회사 메일을 개인적으로 연결 안 해둔 탓에 회사 메일 비밀번호를 얻기 위해 꽤 노력을 했다. 그렇게 첫날과 둘째 날은 일을 하는 척, 개인적으로 밀린 일을 정리하고 조금씩 처리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아직 순번이 되지 않아 원격 설치가 되지 않았다. 셋째 날. 아침부터 디렉터가 전체 메일을 보내왔다. 원격을 동시에 설치할 수 없으니 프로젝트 당 우선순위 근무표를 작성하여 발송하였고 리스트에는 내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MS TEAMS를 통해 화상 회의를 하던 도중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고 잠시 회의를 이탈한 채 원격을 설치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맞이한 평일의 마지막 날. 드디어 일을 시작할 수 있어서 마음을 다잡고 출근했다. 출근시간은 약 2초 정도였고, 근무 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원격 프로그램을 이용해 회사 컴퓨터에 접속해 놓고 아침도 먹고, 씻고 여유롭게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끝내고, 집에서 2km라는 말도 있고 700미터라는 말도 있어 무엇이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가 저물기 전 집 앞 골목에서 운동복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나마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 차도 없고 사람도 없다. 매일 오가는 그 짧은 거리를 왕복으로 열 번 정도 뛸 동안 어이없다는 웃음이 새어 나온다. 왜 이렇게 하루아침에 일상이 바뀌었을까.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큰 거리를 바라보면 슈퍼를 가기 위한 사람들이 드문 보이지만 평소에 비해 차도, 사람도 거의 없다. 재택근무 준비를 위해 사투를 버리는 동안 파리는 이렇게,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볕은 따스하였고 옅은 벚꽃은 일찍이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로 펴 오르기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물이 맑아졌다는 것도, 자취를 감추었던 돌고래가 60년 만에 돌아왔다는 신문 기사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거리의 풍경이었다.
격리를 시작한 첫 주는 이렇게 보내었다. 충격으로 인한 수습과 적응, 순응 그리고 준비였다. 한 주가 끝나는 저녁. 회사 대표에게서 전체 메일이 왔다. 본인이 사무실을 개업하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러한 일은 처음이라는 말과 함께 다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취지의 메일이었다. 아마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은 프리랜서와, 계약직 그리고 그중에서도 외국인이 우선순위가 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적 메일이라도 이렇게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에 묘한 이질감이 생겼다. 순간, 한숨이 새어 나왔는데 그것은 안도의 한숨과 다른 종류의 허탈감이 아무렇게나 섞여 있었다. 코로나의 감염에 대한 걱정보다 아마도 그 이후로 펼쳐질 험난한 길 위로의 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재어보고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