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57...58...59....
초침을 마지막으로 손목시계의 모든 바늘은 순간 겹쳐졌고 날짜판의 숫자가 하나, 넘어갔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생일을 올해도 파리에서 맞이했다.
칠 년 전, 이곳에서 맞이하는 처음의 생일날이었다. 그때는 어리숙한 요리 솜씨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중에 파는 소스를 구해다 부은 파스타와 고추장 범벅인 제육볶음 정도. 여전히 프랑스 지방에 살던 때라 한국 음식을 접하기 어려웠으니 내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곤 한국에서 받은 마른반찬 정도.
며칠 전부터 생일이 기다려졌다. 유독 더웠던 유월의 초여름. 생일을 핑계 삼아 비싸서 가보지 못했던 한식당을 가기 위함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학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그 고민을 했다. 인터넷에서 메뉴를 보고 사진으로 찍은 뒤 수시로 꺼내보았다.
생일은 평일의 어느 하루였으며 에어컨도 없는 한식당을 찾기엔 너무나 무더운 날. 작은 종이 달린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텅 빈 식당에 어서 오라는 말소리가 주방 너머로부터 들려왔다. 혼자 왔다 말을 하고 구석 어딘가에 앉아 메뉴를 찬찬히 읽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해두고 오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얼마 동안 훑어본 뒤 주문했다.
'김치찌개 하나랑 공깃밥, 그리고 식혜 하나 주세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을 찬찬히 구경했다. 누르스름한 한지로 바른 벽 앞에 비슷한 톤의 나무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활짝 열어둔 뒷문으로는 파릇한 대나무들이 보였다. 식당에 아무도 없는 탓에 바람이 불면 대나무 잎이 부대끼는 소리와 주방에서 나오는 소리. 그리고 거리의 차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시간이 조금 흘러 한 커플이 식당에 들어와 근처에 앉았고 그 사이 음식이 놓였다. 자그마한 솥에 담긴 김치찌개와 흰밥, 숙주로 만든 듯한 무침부터 몇 개의 반찬과 식혜가. 더운 탓에 식혜를 조금 마신 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먹는 김치인 탓인지, 아니면 며칠 전부터 기다려왔던 생일 밥상이기 때문인지 맛있게 먹었다. 반찬 하나,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주문하고 밥을 다 먹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충 삼십 분의 시간.
칠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삼십 분의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목요일이었으며, 시간은 한 낮의 한 시. 도시의 대학들은 이미 방학을 시작해 주변의 거리가 한산했던 날. 그렇게 프랑스에서 맞이한 첫 번째의 생일이 고작 혼자 한 식당에 가 김치찌개 한 그릇 먹는 일이었다니.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 뒤로 친구들과 식당을 한 번 더 찾았다. 아마, 그 도시를 떠날 때쯤인 것 같았는데 생일날 홀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년이 흐르고 맞이한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 생일. 올해는 잔뜩 쌓인 서류더미 옆에서 생일 밤을 맞이했다. 나이가 들면 홀로 맞이하는 생일에 무뎌진다 하는데 마냥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평소에 억누르던 욕구를 생일을 핑계 삼아 표출한다. 여행을 떠난다던지, 입고 갈 곳도 딱히 없으면서 새 옷을 산다던지. 출근하는 가방 속, 괜시레 하룻밤치의 속옷이나 세면도구를 챙겨 일을 나선다. 혹시라도 퇴근하고 바로 기차역을 향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차를 타면 어디로 갈까. 이름 모를 그곳에, 가장 빠른 표를 끊어 다녀올까. 그러다 헝가리나 네덜란드까지 가게 되는 건 아닐까. 파리에서 기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나라들. 그것도 나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예매 창을 열고 닫기를 몇 번 반복.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일이 두려워 기차역으로 향하는 일은 진즉에 포기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발길을 돌려 센강으로 향했다. 작년 생일에도 하였던 일. 퐁네프에서 져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지나간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의 생일 밤, 곤함 끝에 꿈을 꾸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당신은 우리에게 무슨 사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할 수 있을까, 재차 되물었다. 다른 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질문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꿈속에서 우리는 어떤 순간이었을까. 우리 사이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행복에 가까워져 가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흐릿해져 가는 순간을 꿈속에서 지나쳐 간 것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