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아침 여섯 시 반
정적으로 밤새 채워진 방에 전화기의 알람이 울린다. 부스럭하는 소리와 둔턱 한 소리가 겹치더니 방은 밝혀졌다. 부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부엌으로 향한다. 어젯밤 씻어둔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한 숟가락 넣어 인덕션 위에 올린 후 전원을 켠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로 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러면 어느새 커피는 끓고 있고, 그것을 하얀 머그컵에 옮겨 담은 후 거실로 와 조금씩 마시며 굳은 몸을 펴기 위한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여섯 시 사십오 분
아직은 어두운 거리로 나와 천천히 뛰기 시작하며 몸을 푼다. 얼마 전부터 왼쪽 허벅지가 조금씩 당기기 시작해 평소보다 천천히 목적지인 퐁네프를 지나 퐁데자르까지 달리기 시작한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사거리의 카페와 빵집 그리고 노란 우체국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곱 시 오분
달리기 시작한 지 이십 분. 커피를 마시고 달리는 탓인지 지나치는 빵집들의 냄새가 유독 자극적이다. 몇 겹의 유혹을 이겨내고 가쁜 호흡을 여러 차례 삼키다 보면 나지막한 언덕 너머의 노트르담 성당 앞에 도착하는 시간. 삼월의 중간쯤이라 해 뜨는 시간이 빨라진 탓에 떠오르는 달리는 길 우측으로 떠오르는 해가 살짝 보인다.
일곱 시 십오 분
시테의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깨어났을까. 저곳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지는 해를 보는 기분은 어떨까. 노트르담 성당 너머 해가 뜨는 걸 보고 일어나며 에펠탑 옆으로 지는 해를 보며 밤의 시간을 보내는 곳인데. 그곳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가족과 혹은 연인과 보내는 시간의 크기는 얼만큼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과 나란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퐁네프를 지나 퐁데자르에 도착한다. 날씨가 좋다 예보된 날이면 아침 일찍 삼각대를 고정해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파리의 날씨는 변덕스럽기에 때론 맑다가 비가 오기도. 그러다 날이 다시 맑아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운이 좋다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날은 날을 잘못 골랐네 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혹은 다른 이유로 이른 아침을 시작한 사람들을 지나쳐 퐁데자르의 다리와 땅의 경계선을 결승점처럼 내딛으며 아침 운동이 끝난다. 흐트러진 호흡을 정리하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한 장 담는다. 에펠탑도 좋고, 퐁네프도 좋아하는 나로서 그 중간에 서서 고민하다 사이좋게 한 장씩, 그곳의 풍경을 차곡히 담는다.
일곱 시 이십오 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퐁네프에서 7호선을 타고 집 근처 역까지 15분. 그동안 밤새 온 메시지나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한다. 그리고 사진을 하나 골라 SNS에 기록을 하면 어느새 도착. 집으로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고 폼롤러로 마사지와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다. 점심때 먹을 도시락을 챙기고 옷까지 갈아입으면 준비 끝.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 이때 간단히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쓴다.
여덟 시 사십 분
마레에 있는 사무실로 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을 탄다. 퐁 마리 역에 내려 마레 중심 방향으로. 역 출구는 강가에 있어 바람이 조금 거칠다. 이른 봄이지만 아침에 달린 탓 인지 추운 것보다는 상쾌하다. 센 강변에서 1호선 생폴 역을 지나 피카소 미술관 방향으로 걸어간다. 중간에 슈퍼에 들러 생과일주스를 하나 산 후 코트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는다. 자주 가는 카페 스웨두와는 굳게 닫혀 있고 맞은편에 있는 공원에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렇게 몇 개의 갤러리를 더 지나치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아침을 일찍 시작한 뒤, 평소보다 더 일찍 오게 되었다. 자리에 가방을 내려두고 옷걸이에 코트를 건 뒤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옆의 동료와 짧은 지난밤과 길었던 아침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업무를 시작하면서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코로나로 생활은 지극히 단순해졌고 그 리듬에 어느새 적응하였다. 그러다보니 아침의 시간을 찾았다.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는 의지는 아니었고, 저녁 통금시간 때문에 운동할 시간이 아침뿐이라 조금 일찍 일어나 뛰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아침이 주는 가치에 매료되었다.
새벽의 파리.
새벽이라 부르기엔 조금 늦은 시간 일 수 있지만 달리기가 끝난 후 파리의 풍경은 여전히 고요하다. 멀리 떠 오르는 해를 보면 평화롭고 출근길의 차 소리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거리를 채우고 있다. 달리다 구워진 빵 냄새 때문에 힘들었던 걸 생각하며 루브르 박물관 옆, 모퉁이에 있는 작은 빵 집에 들러 크로와상을 하나 포장해 지하철을 탄다.
절대 아침형 인간은 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잠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아침에 잘 일어나는 편도 아니었다. 일이 있으면 절대 지각은 하지 않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고통은 늘 유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과 회사의 반복이라는 평소의 풍경에 지루함을 느껴 새해부터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동네의 풍경도 나쁘다 할 순 없지만 좋아하는 퐁네프의 풍경을 보고 싶었으니 여름밤이면 가끔 걷던 그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되겠어하던 것들이 지금은 매일 같이 달리고 있고 어느새 다음날 아침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