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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Feb 22. 2021

파리 한인민박 집


"Voie 2, attention au passage d'un train. Éloignez-vous de la bordure du quai."

(2번 플랫폼의 승객들에게 알립니다. 열차가 들어오니 철도로부터 물러나 주세요.)




기차역 플랫폼에서  나오는 방송을 듣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서  공부 하던 시간.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는 길은 설레였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파리를 여행하는 일. 보고싶던 전시에 가고 관광객들이 가는 흔한 맛집도 찾아다녔다. 에펠탑은 볼 때마다 놀라웠고 생 마르텡 운하의 여름빛은 파리의 어느 곳보다 생기롭고 고혹적이다. 그렇게 두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 다니며 도시 전체를 구경 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될 때쯤 숙소로 돌아간다. 하루의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할 찰나 숙소에서는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파리로 여행을 올 때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늘 변하지 않던 것은 바로 파리의 민박집. 향수병이라는 게 가끔 찾아온다. 3,6,9법칙이란 게 완전히 엉터리는 아닌 듯 하다. 3개월, 6개월, 9개월의 타이밍 쯤 향수병이 한 번 찾아온다는 법칙. 나 또한 비슷했다. 날씨 탓, 기분 탓, 학교 탓, 직장 탓 그것도 아니면 자고 일어나 보니 문득 곁에 와있는 종류의 마음. 여러 방법으로 향수병이란 걸 희석해보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여행이었다. 그리고 민박집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처방전 중 하나 이었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과 며칠을 지내다 보면 나도 한국에서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녁이 찾아온 민박집. 하나 둘 시간에 맞추어 둥근 밥상 앞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누구는 방에서 슬금 나오고 누군가는 시간에 맞추어 환하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자연스레 식탁에 앉는다. 다들 하루 종일 열심히도 다녔을 텐데 밥상 앞에서 어느 누구도 지친 기색이 없다. 그들은 단 하루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가져왔다. 밥을 먹으며 여행의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진다. 그렇게 밥상 위로 나누어지는 시간은 또 다른 여행이라 여겼다. 


밥상 위에 올라가는 음식의 종류 때문인지 민박집 밥상에 머무는 특유의 온기가 좋았다. 때론 이른 약속 탓에 밥을 먹었음에도 저녁시간에 맞추어 함께 시간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고혹적인 생마르탱의 여름빛 만큼이나 생기 있고 찬란하게 빛났다.


하루는 밥을 먹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곧 해가 저물 시간이니 야경을 보러 나갈 것을 제안했다. 걷기 좋은 날씨가 첫 번째 이유였으며 옅은 술기운에 내가 본 파리의 밤을 괜히 자랑하고 싶은 바람이기도 했다. 파리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 자주 오르던 곳이 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샹젤리제의 개선문으로 향하였다.

나선형 계단을 열심히 타고 올라 마지막 계단을 밝고 옥상에 닿으니 선선한 초여름의 바람으로 가득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에펠탑과 등 뒤로 넘어가는 노을을 마주한 채 한참을 머물다 내려왔다. 그 외에도 파리 민박집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지만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파리 외에도 유럽에서 배낭여행을 다닐 때는 민박집을 선호한다. 이유는 파리의 민박집을 가는 이유와 동일했으며 저녁밥을 먹고 함께 도시의 밤을 헤집고 다녔다.


한 때 웃돈을 줘가면서 가입을 하던 소셜미디어가 있다. 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성 되는 곳.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지금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예전의 그 민박집이 생각났다. 둥근 탁자에 앉아 다양한 사람들의 찬란했던 여행이야기를 나누던 그때가. 향수병 때문에 선택했던 숙소들은 어느새 하나의 여행이 되었고 몇 년이 흐른 후 소셜미디어 속에서 그 감정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느 밤 파리의 노란 집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날의 감정이 떠올라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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