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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Nov 17. 2019

집 밥

파리에 있으면서 가장 먹고 싶은 것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밥숟갈 위로 두툼한 고등어 살과 함께 놓인 당신의 질문 하나. 


“파리에 있으면서 평소에 뭐가 가장 먹고 싶니?”


순간 유학생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한국 음식의 순위를 읊어볼까. 어디서 보니 양념 통닭, 곱창 이런 순서인 듯했는데. 아니면 평소 좋아하는 생선 종류를 읊어볼까. 겨울 제주를 여행하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먹은 따뜻한 몸국이 정말 맛있었다고. 잠깐을 고민하다 한 대답은 간결했다.


“집밥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하였다. 집에서 끼니를 챙길 때마다 집밥이 주는 온기 한편이 그리웠다. 그 말 끝에 걸린 측은지심이라는 게 꽤나 무거웠던 것인지 그래서 그 말 속에 섞인 감정이 당신 쪽으로 온전히 기운 탓인지 몰라도 묵묵히 남은 생선 살을 발라 내 앞에 놓인 흰 쌀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파리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버스로 세 시간 남짓의 거리. 기나긴 여행의 피로가 풀리기도 전 하나의 크나큰 산을 넘어 그곳으로 향하였다. 당신은 반가운 인사와 함께 손수 밥을 지어주었다. 밥을 짓다 앞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갑자기 집을 나섰다. 시간이 얼마 지나고 빈손으로 나갔던 손에는 막 뜬 회 한 접시가 들려있었다. 그렇게 뚝딱 차려진 밥상은 어느새 이곳의 산해 진미들로 가득 채워졌다.




집 밥이 품은 따스함을 항상 그리워한다. 파리의  식탁이 유달리 차가운 색을 띄어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나의 요리 실력이 부족한 이유라 탓해본 적도 있다.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밥을 놓고 비싸고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포장해 와 아끼던 그릇에 옮겨 담아 보아도 큰 차이가 없었다. 몇 번의 해가 지나고 깨달은 건 집 밥이라는 게 결국 누군가의 마음이었다. 파리의 집 식탁 위에 없던 것은 나를 헤아려 담아내는 당신의 마음이었다. 그 결핍을 언제부터인가 어디로 떠나는 행위로 메우고 있었다.


퇴근 후 집의 적적함을 마주하기 싫던 날이 있었다. 회사 근처에서 요기할 만한 것을 산 후 곧장 센 강으로 향하였다. 그 곳의 풍경들에 얽힌 상상들은 비워진 마음 속을 메워준다.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 나에게 건네는 수많은 감정들은 유유히 물 표면 위로 유영한다.


 날은 한 척의 유람선이었다. 해가 저물 때쯤이면 유람선이 더 많아지는 데 그중 식사를 하는 유람선 한 척이 유독 눈에 띄었다. 관광 유람선은 몇 번 타본 적 있지만 배 위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는 호기심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 파리의 여름이 찾아 올 때쯤 유람선에서 근사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을 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 해의 여름은 얄궂었고 더 이상 우리가 함께 기다리는 여름은 사라졌다.


집의 쓸쓸함이 싫어 센 강에 왔더니 고작 유람선 하나를 보고 너머의 당신을 떠올린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풍경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더 이상 당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여행 할 이유가 사라져 버린 길을 사실 그 이후로도 몇 번 발길을 두었다. 

가장 좋았던 계절은 겨울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산자락 작은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부엌 연기를 보면 괜스레 그 날의 식탁이 더욱 생각났다. 당신이 지어준 밥을 먹고자 그곳까지 찾아왔다는 말을 할 용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배웅하는 이 하나 없는 적만한 터미널에서 한참을 서성이었다. 그러다 소득없이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둑해진 도로를 달리며 바라보는 산기슭 아래 부엌 연기는 당신에게로 기울었던 지난 모든 감정으로 변해 다시 나에게로 쏟아졌다. 그것들을 텅 빈 주머니에 털어 넣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아 잠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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