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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술 한 잔

당신이 마신 술 한 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by 흰남방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골반과 다리의 대퇴부를 이어주는 연골이 다른 사람들의 평균 절반 채가 안 되신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다녀도 오래 걷거나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걸으시면 힘드시다. 술을 많이 드시거나 담배를 태워도 마찬가지이다. 젊을 때는 그래도 버틸 만했으나 이제 나이 탓인지 적어도 술은 자주 드시지 않는다. 규칙적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도 하신다. 나도 유전적 까닭 인지 같은 부위가 종종 아플 때가 있다. 사실 큰 통증 이라기 보단 오래 걷다 보면 다리와 골반 사이가 ‘뻑뻑해진다'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다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직장을 나가신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를 거르지 않고 직장으로 향하신다. 몸을 많이 쓰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위해 한 번도 일을 빠지신 적이 없다. 회사를 다니시다 장사를 시작하셨다. 십 년 넘게 장사를 하시면서도 아프다는 이유로 출근을 등한시하신 적이 없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운전을 많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위해 늘 웃는 얼굴로 출근하신다. 최근에는 생신이라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시라니 웃으며 나의 건강이라 말하셨다.


한 때는 아버지의 출근에, 퇴근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냥 가시는가 보다, 오시는가 보다 그러하였다. 나에게는 평생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셨다. 그러다 가끔 약주에 취해 제 한 몸을 못 가누는 아버지를 힘겹게 침대에 눕혀드리던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술냄새가 나는 아버지의 숨결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숨결이, 아버지가 쓰다딘 술 한 잔을 넘긴 그 무게가 얼마큼이나 무거 웠던 것 인 지 그때는 잘 알지 못하였다.


잠시 파리를 떠나 있겠다 당신에게 말하고 여러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지나가다 만나온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제각각 다른 삶의 이야기였고 그 무게들이 어느 순간 공감이 되었다. 다른 이의 삶을 통해 아버지의 시간을 돌이켜 본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밤이었다. 만약 차가운 겨울바람이 아니었다면 붉혀진 얼굴 탓에 그만 숨을 곳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반년이 지난 후 다시 나의 자리, 파리로 돌아왔다. 아프다고 한 감정들은 여전히 힘든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겪고 이겨내야 할 존재임이길 여전히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삶의 필요한 구김이라 그게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을 테다. 그때의 내가 마셨던 술 한 잔은 아버지가 퇴근 마셨던 술 한 잔의 무게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가벼울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무거워지겠지. 나 또한 그 술 한잔 조차 넘기기 힘들 만큼이나. 그렇게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는가 보다. 매일의 삶이 지겹도록 같지만 때론 다르고 서글프게 느껴지면서 그렇게 성장해 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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