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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Mar 26. 2017

사랑은 그들처럼

모든 시작은 하나의 추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파리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꼭 그곳에서 만나야 했던 인연인 것처럼. 그리고 파리로 가던 기차에서 함께 내렸고 잊을 수 없는 오스트리아 빈 에서의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다시 는 돌아오지 않을 평생 단 하루의 밤. 그리고 그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이야기이다.  






개봉한 지 이십 년이 지난 영화를 여행을 떠나기 전 우연찮게 보게 되었다. 여행의 목적지 중 한 곳이 빈이었고 그것을 아는 지인에게 말하니 대뜸 이 영화를 반드시 보고 떠나길 추천하였다.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그 영화를 보는 바람에 그것은 빈에서 머물러야 할 이유가 되어버려 한 달여의 시간 중 일정을 고쳐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빈에서 머물게 되었다.


사월의 밤. 야간 버스를 타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출발해 체코 프라하로 건너가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한 달의 여행 기간 동안 네 개의 나라 거쳐갔고 그중 오스트리아에서 총 열하루를 머물게 되었다. 빈이라는 도시를 구경하기에는 삼일 정도의 시간으로 충분하였으니 나머지 나흘은 호스텔 입구의 커다란 창가에  앉아 밀린 글을 쓰거나 편지를 썼다. 그러다 그마저 실증을 느끼게 될 때 도시를 산책하고 왔다. 밤에는 나처럼 게으른 여행객이랑 운 좋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주변의 맛집이나 혹은 좋은 음악이 나오는 술집을 찾으러 함께 나서곤 하였다.


나흘 동안의 산책은 온전히 영화 속의 흔적을 찾으러 다니는 일에 할애하였다. 유럽의 어느 대단한 관광지들처럼 수많은 인파를 뚫고 들어갈 생각에 큰 다짐을 하고 찾았으나 그렇게 방문한 LP가게는 문이 닫혀있어으며 이들이 걸었던 강변과 공원 심지어 빈의 오페라까지 영화의 흔적을 찾아온 이는 없었다. 그러기도 한 것이 이미 개봉한 지 수십 년이 흘렀으니 이제야 그 영화를 보았고 떠나온 여행길에서 흔적을 찾는 이는 분명 흔하지 않은 것이었다.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이 되어서 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느라 호기롭게 소리치고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은 이상과 현실 사이쯤에 애매하게 걸쳐진 일이라 주인공이 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빈을 떠나는 기차 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빈에서 잘츠부르크 이동하고 며칠 간의 폭우 속에 갇혀 지냈다. 그 뒤로 만난 화창한 할슈타트는 꼭 다른 세상 속에 온 것 같았다. 할슈타트를 가기 위해 지나갔던 길은 나의 여행길 중 가장 아름답다 자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행 이야기는 잠시 아껴두려고 한다. 할슈타트를 떠날 때쯤 다시 폭우가 시작되었고 뮌헨을 거쳐 나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한 달의 여행을 끝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새벽의 중간 어디쯤이었다.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을 평생 단 하루의 밤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꿈같던 배낭여행이 앞으로 흐릿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새벽이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혼자서 의 여행을 몇 번 떠나기는 하였지만 그때 와는 분명 다른 여행들이었다.





가끔 그 여행이 그리워질 때. 그리고 빈에서 비포 선라이즈의 흔적을 찾아다니던 추억이 슬그머니 내 앞에 나타날 때는 파리의 셰익스피어 컴패니 서점을 찾는다. 셰익스피어 서점은 센 강을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서점 앞에는 자그마한 나무가 있는데 파리에 봄이 찾아왔다는 것을 이 작은 나무에 피어오르는 옅은 꽃봉오리를 보고 알게 된다. 서울보다 작은 파리이지만 벚꽃이 필 때쯤이면 일기예보에서는 파리에서 가장 먼저 꽃이 피는 곳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늘 이곳이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풋풋한 감성을 생각하고 들어가려 하지만 서점의 입구는 덩치가 큰 가디언이 지키고 있다.  서점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로지 영어로만 적힌 서적으로 크지 않은 공간에 가득 메워져 있다. 나는 그 책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니 그 사이에 좁은 통로를 지나쳐 2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판매를 위한 1층과 달리 낡은 책들과 나무들의 정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는 방들이 있다. 유독 밝은 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강으로 나 있는 커다랑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온다. 그래서 생각이 많을 때나 무엇인가로부터 안정을 찾고 싶을 때 찾는 곳 중 하나이다. 벽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 있지만 판매를 위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래되고 먼지가 뿌옇게 쌓인 오래된 서적들로 책장을 가득 메워 하나의 벽을 이루고 있다.

 

이 날은 방 안에 있는 딱딱한 나무의자에 기대어 앉아 하염없이 창 밖의 센 강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창 틀에 올려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 속에는 작은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고 영어로 적힌 내용이 이러하였다. 




'저는 파리의 마지막을 몽마르뜨 언덕에서 마무리하려 해요. 아래에 적어둔 시간과 장소에서 당신에게 줄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을 테니 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어주세요 - 존'




누군가의 다음 여행 장소가 적혀 있었다. 날짜는 내가 쪽지를 읽은 날짜로부터 이틀 뒤. 그렇게 여행길 위 우연 속에서의 만남을 기다려보는 사람이었다. 수십 년 전의 영화를 보고 그 흔적을 좇는 이 가 있나 싶었더니 빈이 아닌 파리에서 이렇게나마 보게 될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다른 형태로 영화 같은 여행을 해보려 했었다. ‘인연’을 위한 여행. 그 ‘인연’은 연인을 뜻 할 수 도, 평생의 친구를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것을 바라기 보단 사람이든, 해프닝이든 그 외의 무엇이든 인연이기에 만나게 된다는 말을 믿어 보고 싶었던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얇은 실 하나가 걸려 있다는 데 그 길이가 길면 길수록 인연이 되어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말처럼. 이미 그러한 인연이라는 것에 닿았다면 우리 사이의 실이 유독 짧아 길지 않은 삶 속에 만나게 된 소중한 사람들일 테다.




 Tout commence par un souvenir

(모든 것은 하나의 추억에서 시작한다). 


나의 꿈이라고 적힌 것들은 모두 하나의 기억 혹은 추억이라 불릴 만한 것에서 시작하였다. 그래서 저러한 문장을 나의 꿈들이 나열된 노트 가장 높은 곳에 적어두고 시작하였다. 한 달간의 배낭여행 이후 그 문장의 농도는 더욱 깊어졌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자그마한 쪽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떠한 마음으로 거기에 남겨 둔 것인지 조금이나마 되짚어보았다. 애석하게도 그가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그 인연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기로 하였다. 누군가의 새로운 인연을 바라면서 제자리에 쪽지를 끼워 두고 창틀에 책을 올려 다 둔 뒤 햇살을 등진채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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