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비가 내리던 아침.
비가 오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자들이 물과 결합하여 냄새를 만들어 내고 습도가 높아지면 후각이 더 예민해져 평소에 맡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섞인 흙내음을 우린 맡곤 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리 오페라에 있는 어느 카페 이층에 앉아 따뜻한 라떼를 탁자 위에 두고 책을 읽는 일을 좋아한다. 손에 남은 커피의 온기를 나란히 앉은 당신의 손에 건네어 주는 것도 그 좋아하는 일에 포함되어 있다. 내리는 비로 부스스해진 머리칼과 목덜미 그 사이에 머무는 당신의 냄새에 얼굴을 파묻고 싶은 날. 비가 오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냄새에 담겨 떠나지 않아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기에 비 오는 날이면 당신의 꿈속을 여행하고 싶다.
비가 내린 간 밤, 당신의 꿈속을 헤매다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새벽녘, 잠결에 들은 빗소리 탓인지 아니면 당신이 유독 사무치던 밤인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당신의 꿈속을 헤매었다는 것이다. 곤히 잠든 당신에게 고백하던 날. 당신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유독 피곤했던 날인지 수줍게 코를 골던 당신의 귓가에 넌지시 고백을 남겼다. 나도 좋아해, 라며.
곧 떠날 여행을 위해 자그마한 파란 텐트를 샀다. 텐트를 산 김에 이왕 그 속에서 잠들겠다는 유치한 취기에 자정이 넘은 밤. 밤 산책을 다녀와 설명서를 읽어가며 노란 집 속, 자그마한 집을 만들었다. 불을 다 끄고 이불을 끌고 들어가 누우니 생각보다 더 아늑한 텐트. 순간 이 곳에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설픈 고백을 당신의 마음 위로 내뱉을 수 있었을까.
순간 내리는 비가 텐트 위로 닿이는 상상을 하였다. 알프스 어느 산 중턱, 호숫가에 텐트를 치고 밖에는 타다 남은 장작이 여전히 붉게 우리를 지키고 있다. 쏟아지는 별을 지붕 삼아 당신의 얼굴을 괜스레 만져보고 싶다. 새하얀 두 볼을, 내 마음과 같은 색의 입술을.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쓰담고 싶다.
새벽 내내 쏟아진 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 창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를 조합해 당신의 몸 내음을 떠올린다. 그러다 넘치는 감정을 못 견뎌 문을 열고 나간 새벽의 흙냄새는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 밤, 당신의 꿈속을 헤매다 돌아왔다. 비가 추적 내리는 센 강의 표면을 보며 당신의 마음은 어디쯤 있을까. 나에게 조금은 여전히 머물고 있을까. 그러지 않을까. 여전히 물음표로 가득 찬 꿈속. 느낌표로 바꾸고 싶어 산책을 나선다.
헤매어도 괜찮다 싶었다.
당신이 내게 잃은 마음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오늘 밤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머물고 있으니깐.
많이 보고 싶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