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농담 같았던 머나먼 기약과 어느새 마주 합니다.
활주로 수평선 너머 넘어가는 노을빛에 마음이 시큰히 데인 날. 그렇게 떠나온 프랑스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나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가락 끝으로 더듬으며 고르고 있었습니다. 이번 생에는 만나지 않을 이별처럼 여기며 파리에서의 하루를, 그렇게 십 년을 프랑스에서 빼곡하게 채웠네요.
스스로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파리의 풍경 위로 상상하고 그것들을 엮는 하루들이 그저 무한할 것 같았습니다. 체감상 겨우 인사말을 쓴 보통날 같은데 그 한 장의 무게가 꽤나 무겁게 느껴지는 하루네요.
겨울의 끝자락.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에게 덤덤히 퇴사 계획을 알렸습니다. 사실 막 덤덤히 는 아닌 거 같아요. 퇴사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일렁이는 마음을 누른 채 말을 이어 가기가 힘들었어요. 좋든 싫든 고민했던 퇴사를 말로 내뱉어 매듭짓던 날이니 분명 조금은 홀가분할 줄 았는데 파리를 떠날 거냐라는 마지막 질문에 결국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질문은 단순히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야?라는 뜻 정도이었겠지만, 그 순간 제가 보낸 프랑스에서의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시작들이 전부 옅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이상한 나날을 보내었고 어느새 큰 창 너머로 한국행 비행기가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네요.
노을이 저문다, 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하루가 끝나감이 주는 안도 혹은 후련함 때문은 아닙니다. 파리는 그 순간부터 아름다워지기 시작해요. 퐁네프에 나란히 서 노을로 물든 파리를 함께 맞이하자는 말은 당신과 지새울 남은 밤이 기다려진다는 말과 동일했습니다. 당분간 노을이 저무는 파리와 퐁네프 위로 펼쳐진 풍경을 그리워하겠지요. 그 모든 시간과 풍경 속에서 엮어온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고맙다는 말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보낼 아득한 밤을 기다리며 한국에서 또 다른 여행을 꿈꿀게요.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