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앙이 사는 집처럼 설계해주세요."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다 팀 디렉터에게 물었다.
'네가 사는 집은 어떤 집이야?' 그렇게 나눈 이야기 속 수많은 감정이 마음 한 편을 스친다.
활주로 수평선 너머로 늬웃늬웃 넘어간다. 그날은 유독 붉었던 노을빛에 마음이 시큰히 데인 날이었다. 인천공항을 뒤로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어느새 하늘 위로 떠 오르더니 아부다비를 거쳐 동이 틀 무렵에서야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택시 창 밖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첫인상은 영화 속 낭만으로만 가득 채워진 도시는 아니었다.
출퇴근길 매일같이 에펠탑을 본다. 화재 사고 이후 한창 수리 중인 노트르담 성당 건너편에서 지하철을 탄다. 회사와 집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늘 그렇듯 일상의 풍경에 무뎌진다. 그때마다 파리에 산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기 위해 밤 산책을 나서거나 여행 가방을 꾸렸다. 파리를 떠난 곳에서 만나는 이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 시간을 나눌 때 가끔 받는 질문이 있다. -'파리지앙은 어떤 집에 살아요?'. 그때마다 집이란 단어 속에 차곡히 쌓아둔 감정들이 이내 파도처럼 일렁인다.
파리의 집. 규칙적으로 나열된 직사각형의 프랑스식 창 안으로 비치는 내밀한 삶들은 제각각이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에밀리처럼 파리의 환상으로 가득한 동네에서 호화로이 머물까. 아니면, 영화 '라따뚜이'에서 나오는 꿈 많은 주인공 집처럼 멀리 보이는 에펠탑 풍경 위로 평온을 찾는 꼭대기 층 하녀 방일까.
파리에서 몇 년째 머물고 있는 집은 고흐의 그림 속에 자주 나오는 노란 회벽으로 치장된 자그마한 아파트이다. 1946년에 지어졌고 거실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검은 벽난로가 있다. 긴 두 개의 창은 비스듬히 서쪽의 안뜰을 향해 나있다. 그곳엔 건물 관리인이 키우는 화분들이 다수 놓여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화분의 여러 꽃과 흙내음이 더 짙어져 그곳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살짝 열어둔 창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런 날이면 파리의 기나긴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고 있구나 생각되는 사이의 계절. 자그마한 거실이 봄 내음으로 가득해질 때,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퐁네프로 향한다.
퐁네프 주위를 산책하며 센 강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호기심이 생기는 집에는 작은 쪽지에 짧은 인사와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적은 후 살며시 우편함에 넣는다. 봄이 가기 전에는 답장이 오지 않을까 싶은 기대와 함께.
집은 행복을 담을 수 있는 온전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감정과 행복을 잘 알고 정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건축가와 끊임없는 교감을 통해 알맞은 집을 지어야 한다. 파리의 집은 어때요, 묻는 당신의 질문은 내가 빗는 행복의 모양을 가늠해보려는 호기심과 동일하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집 하나를 속삭이듯 들려주었다.
-"계절의 변화를 예민히 느낄 수 집이면 좋아요. 꽃과 풀, 나무로 꾸며진 마당은 집 뒤편에 놓으면 좋을 거 같아요. 넓은 주방이 있고 오래 머물러 앉아 있어도 지겨울 틈이 없는, 손떼가 묻은 긴 나무 식탁이 있는 집. 삐그덕 거리는 계단 옆으로 자그마한 종을 달아 식사시간이면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모두가 식탁으로 모이는 시간이 있는 곳. 마름모 모양의 흰 타일들이 놓인 욕실에는 막 말린 빨래 냄새가 가득하고 살짝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 탓에 옅은 커튼이 흔들리는 곳일 거예요."
프랑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 년 동안 머문 다흐다이옹의 집이 그러하였고 어린 시절 어슴푸레한 나의 여름 집 위에 쌓인 감정들을 모아 빗어낸 행복의 모양이 이러하다 말하였다.
어느 여행길 늦은 밤을 지나는 중이었다. 창 밖으로 새벽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고된 여행을 한 후 잠에 들기 위해 하나둘씩 둥근 식탁을 떠났다. 그러다 누군가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었고 나는 당신에게 속삭였던 그날 밤이 떠올랐고 마음이 일렁였다. 홀로 남은 식탁 위 낮에 구입한 몇 장의 엽서를 꺼내었다. 어설프게 깎은 연필로 몇 줄의 문장과 하나의 도면을 그렸다.
건네지 못한 엽서는 여전히 나의 서랍 속에 머물러 있다. 훗날 나는 당신과 보내었던 수많은 밤 중 하필 처음의 것이 여행길 위에서 마주 한 것이었으며 그날 밤 숙소 창 밖으로 유달리 비가 많이 왔던 탓이라 여겼다.
파리가 봄의 기운으로 채워지면 옅어진 그날의 말이 마음에 닿인 후 충돌한다. 그럴 때마다 외투를 챙겨 입고 퐁네프로 향한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산책의 시작은 퐁네프이다. 왜인가 생각해보니 어느새 나는 노란 회벽으로 마감된 아파트뿐 아니라 퐁네프의 풍경 또한 나의 집 일부라 생각하고 있었다. 파리지앙은 어떤 집에 살아요,라고 여행길 위에서 내게 다시 묻는다면 그리 답 할 것이다.
"파리에서 당신과 나란히 걸었던 모든 순간 속에서 저는 살고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