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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탕진남 Sep 05. 2023

여행은 숙제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축제다.

나는 계획을 세워두는 걸 안 좋아한다.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아는가? 너무 큰 계획은 현재에 집중하고 즐기는데 리스크만을 만든다. 그래서 즉흥적이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떠나기 3일 전 세계 여행을 결심해서 1달 반 짜리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이 끝나기 2일 전 난 스페인 여행을 결정했고, 스페인 계획이 끝나기 하루 전 로드트립을 결정했다. 


사실 이런 계획을 하는 것을 평소에도 즐겼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여행을 실행하는 중간에도 계획을 짜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러다 보니 여행을 낭비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강하게 다그치기도 했었다. 


그 결과 12일 동안 약 8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는 미친 계획을 세웠었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것인데, 한국보다 땅이 훨씬 큰 스페인에서 이걸 하려니 가슴이 턱턱 막히더라. 이렇게 되면 거의 모든 도시에서 1박 2일을 하게 되는데, 오늘은 이 계획이 현실 가능한 것인지 점검을 해봤다. 


오전 12시 : 수면

오전 10시 : 기상 후 아침 식사

오전 11시 : 출발 

2시간 이동 

1시 : 점심

2시 : 3시간 이동

5시 : 1시간 휴식

6시 : 2시간 저녁 식사

8시 : 3시간 관광

11시 : 샤워 후 취짐


이렇게 보니 웃음 밖에 안 나오더라. 이게 정년 여행인가 싶었다. 여행이란 경험 자체가 목적인데, 이건 마라톤처럼 완주 자체가 목적인 느낌이었다. 이후 생각을 해보니 2박 3일도 한 도시를 경험하기에 촉박한 시간이기에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도시에 3박 4일을 하기로 했다. 그 컨셉에 맞춰 진짜 가고 싶은 것만 추리고, 운전 시간에 맞춰서 세부 계획을 수정했다. 


덕분에 시체스, 마드리드, 세비야, 그라나다, 발렌시아 총 5개의 도시를 누비고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배운 게 있다. 한국식 마인드가 강해서, 여행 마저도 숙제처럼 생각했다는 거다. 사실 진정한 여행이란 유명한 관광지를 정복하기보다는, 일상으로 벗어난 시간 자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여행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도시를 끝장 내는 결과주의적인 마인드를 내려놓기로 했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여행지를 공부하며 새로운 경험을 유익한 시간이며, 이런 즉흥과 여유있는 스타일 덕분에 상상도 못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숙제가 아니다. 축제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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