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시에는 괜찮다. 평소에는 집 생각이 하나도 안 난다. 돈만 있다면, 이번 기회에 1년 정도 서양권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한 번씩은 격하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라도, 떠나고 싶을 정도 격하게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래와 같이 생각하며 마음을 되잡는다.
1. 어차피 집에 못 간다.
미국에서 유럽을 가고, 유럽에서 유럽을 다닐 때 잘 모른다. 길어봐야 3시간, 짧으면 1시간 정도로 유럽 사이에서는 왔다갔다할 수가 있다. 스페인이 그랬다. 덴마크에서 출발해 독일에서 경유해서 왔는데, 둘의 비행시간을 다 합쳐도 4시간이 안 넘는다. 그래서 스페인이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진짜 내 집 서울을 생각해보면 이곳은 아주 먼 곳이다. 비행기만 10시간을 타야하는 아주 먼 곳이라는 말이다. 즉 힘들어서 집 가고 싶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힘듦은 어차피 견뎌내야 한다.
2. 어차피 인생은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럼 한국은 힘들지 않은가?" 힘듦의 방향이 다를 뿐, 어차피 거기서도 힘들 것이다. 일상 속 문제들을 끊임없이 솟구칠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또 다시 방법을 찾아내야 할 거다. 인생이 힘들다는 건, 한 마디로 건강하게 잘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는 한 어디에 있든, 나는 평생을 힘들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힘들다고 집에 간다는 건, 개인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3. 쪽팔려서 못하겠다.
내가 내가 생각하는 나는 굉장히 약한 사람이다. 남들보다 겁도 많고 예민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렇지만 끈질기다. 힘들고 지치고 쓰러질 것 같아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약한데, 완벽주의가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것도 크다. 중간에 돌아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겠지만, 내가 나 자신에게 쪽팔린다. 스스로 세운 목표도 성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은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건 건강하지 않는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4. 어차피 모든 시련은 순각적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힘든 일이 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힘들 수도 있어도 내가 너그러운 태도만 가진다면, 평생 동안 힘든 것은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순간순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고통을 바라보려고 한다.
5. 넌 집에 가고 싶은 게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유는 사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5번이다. 사실 내가 집에 가고 싶은 건, 진짜 집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능하다면, 적어도 1년은 서양권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럼에도 집에 가고 싶은 이유는 나 때문이다.
나는 남들처럼 힐링하고 예쁜 사진 찍기 위해서 여행하는 게 아니다. 나는 성장하고 싶어서 여행한다. 그래서 따라서 모든 선택 기준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체험하는 것이 대두분의 스케줄을 차지 한다. 이렇게 되면 매일 같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공부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 시간이 반복되면, 정말 힘들다.
인간은 낯설고 두려운 곳을 찾아가야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나처럼 성장에 미쳐서 쉬지도 않고 매일 같이 전투하는 태세로 산다면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지름김이 된다. 나는 이것을 '심리적 과부하'라고 부른다. 익숙한 것 하나도 없이 매일 같이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다 보면, 3일에 한 번 꼴은 심리적 과부하가 생긴다. 그땐 몸도 마음도 완전히 에러가 나는데, 이러한 이유로 나는 3일에 한 번씩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론. 사실 스스로 이미 결론을 내렸다. 굳이 뭔가를 더 하려고 애 쓰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혼자 살아보는 경험만 해도 엄청난 성장의 재료라는 것이다. 동시에 70일 동안 이미 충분한 성장을 가졌기에 관광은 줄이고, 글이나 쓰면서 이제는 드디어 힐링을 해보려고 한다. (가진 돈을 다 써서 충분한 힐링은 못하겠지만)
그렇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 이런 욕망을 가진 한 '심리적 과부하'는 나와 계속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이것이 당연한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