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좋아한다. 건강을 생각하기에 많이 먹지는 않아도, 술이라는 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문화의 새로운 맛이라는 경험 자체를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아무 맛도 없는 소주보다는 위스키, 꼬낙, 와인과 같은 풍미 있는 것들을 평소에도 더 선호한다.
그 와중에 나는 스페인에 왔다. 와보고 나니, 이곳이 세계 3대 주산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곳의 다양한 와인을 저렴하게 접할 수 있었다. 심지어 상당히 좋은 퀄리티의 스페인식 샴페인을 만드는 까바와 여러 종류의 와인을 와이너리 투어를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 스페인에서 머무는 동안에 3일에 한 번 꼴로 와인을 꾸준히 마신 것 같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와인이 맛있기 때문인 것도 있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소주는 기본적으로 보드카처럼 무취, 무맛, 무색이다. 따라서 즐길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보드카는 그 자체로 먹기보다는 칵테일처럼 섞이는 재료로서 많이 사용된다. 반면에 와인은 냄새, 맛, 색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포도 품종과 만들어지는 과정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로 변한다. 그렇다 보니 술은 벌컥벌컥 마시기보다는, 맛을 음미하면서 즐기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마시기 전에는, 눈으로 기포와 점도를 본다. 이후에는 잔을 가볍게 흔들어 공기를 술을 부딪히게 한 뒤, 냄새를 맡아본다. 충분히 즐기고 난 후에는 술을 마시는데, 바로 삼키는게 아니라 충분히 맛을 느껴질 때까지 머금는다. 그 과정에서 공기와 체온이 섞이게 되는데, 이때 와인의 맛을 더 풍요롭게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닌다. 삼킬 때는 삼켜지는 느낌을 느껴보고, 삼키고 나서는 입 속에 남아있는 와인의 맛을 느껴본다.
만약에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와인은 포도 맛 나는 술일 뿐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과정을 약 한 달 정도 반복하다 보니, "인생도 이렇게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대할 때, 소주 먹듯이 대하기 때문이다.. 맛을 느끼기는 커녕 취햐려고 무작정 마시는 소주처럼, 내면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것을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며, 회피하기 바쁘다.
반대로 와인을 먹듯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대부분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데, 와인을 먹듯 그것이 전하는 메세지를 들어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울함이 느껴진다고 가정해보자. 대부분은 우울함이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에 짜증이 나서, 그것을 없애기 위한 행동을 한다. 음악을 듣는다던지, 게임을 한다던지, 친구를 만난다던지 집중력을 다른 곳으로 옮김으로서 회피한다.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는 거다. 우울함이라는 감정과 함께 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는 생각에 집중하는 거다. "친구와 잘 지내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지 않는 행동을 자꾸 반복해서 힘들었어.", "상사가 나에게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아서 너무 슬퍼.", " 나는 나만의 시간을 존중받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서 괴로워."와 같이 머릿속에서 남아있지만, 집중하지 않아서 몰랐던 생각들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이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2가지가 있다.
1.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일 자체가 사라진다. 흔히 말하는 멘탈이 나가는 일이 없어진다.
2.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된다. 따라서 우울함에 빠져 괴로워하는 시간 자체가 사라진다. 오히려 우울감으로 계기로서, 더 성장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은 소주처럼이 아니라, 와인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컥벌컥 정신 없이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음미하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당신의 내면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인정하고 와인을 마시듯 인생을 살아간다면, 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