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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게 남아있는 것

고3 졸업식날 발견한 희망

by 차차

며칠 전, 3학년 아이들의 졸업식이 있었다.


예전에는 졸업장을 졸업식장에서는 대표학생에게만 수여하고, 나머지는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나눠주셨는데 요즘은 달라졌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체육관 앞 화면에 개인사진도 띄워주고, 교장선생님이 모든 졸업생에게 졸업장을 수여한다.


교사석에 앉아서 그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다가 중간에 어떤 아이가 멋진 포즈로 인사를 하거나 특이한 리액션을 보이면 빵 터지기도 하고, 특별한 추억이 있었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면 그때의 감동과 아이들의 성장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2층에서 축하한다고 외치기도 하고, 유학을 가는 아이에게는 "외국에서도 잘하자!" 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


작년 졸업식장에서는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기도 하고, 번아웃으로 휴직을 앞두고 있던 터라 만감이 교차해서 나도 모르게 폭풍눈물을 흘렸더랬다. 올해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졸업식이 끝나고 앞에 있던 아이들이 뒤쪽에 있는 문을 향해 나가는 데 선생님들이 통로에 서서 한 명씩 인사를 해줬다. 축하한다는 말과 파이팅도 건네고, 악수와 하이파이브도 건넸다.

그런데 재빈이가 펑펑 울면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우리 학교는 남학교라서 이런 풍경이 흔하지 않은데 그 아이를 보고 나도 눈물샘이 터졌다. 그리고 쫌 이따가 시후도 울면서 오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한 아이들이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사실 나도 중학교 때 그랬다. 엄마가 다른 아이들은 다 웃으면서 나오는데 나만 울면서 나온다고..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교사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나날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입시제도의 영향도 많이 받는데 그중 대입평가항목에서 독서활동상황이 배제되면서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도 크게 줄었다.

물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교과 세특에 기재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또 우리 학교는 내가 부임한 11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 수가 약 70%가량 줄어들었다.

학생부 평가항목이 축소된 상황에서 학생 수 마저 적은 건 아이들 입장에서는 타격이 더 크다. 교과성적이 가장 중요한데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비율이 같아도 아이들은 명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어느 정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 전학이나 자퇴를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1년에 몇 번 하던 방과 후 도서관 프로그램은 학원 가기 바쁜 아이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해 결국 시험이 끝난 후 기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는 등 일과 중으로 돌렸다. 학기마다 한 번씩 하는 도서관 이벤트도 별 반응이 없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파리만 날린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공부하는 아이들로 조금 채워지는 정도.

교사로서의 보람이나 자존감도 많이 낮아지고,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수업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저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졸업식날 흘린 눈물을 통해 '내가 아직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는구나' 깨달았다는 것이다.

속상하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앞으로는 힘을 좀 빼고 좀 더 재밌게 지내볼 생각이다.


졸업식날 아침, 도서관에 방문한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를 몇 마디 나누었는데 그게 참 반갑고 즐거웠다.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왜 그 책이 재밌는지, 주로 어디서 책을 사는지 이런 대화들이었는데 짧은 대화 속에서 그 아이의 생활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아주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나도 같이 읽어보면서 공감해 주고, 필요한 책을 권해주기도 하면서 학교생활에서 기댈 곳 하나 만들어주는 것. 이런 게 필요한 게 아닐까?


일단 단골들부터 세심하게 잘 챙겨야겠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또 북적북적한 도서관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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