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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Nov 12. 2021

미라클 모닝이라는 허상(2)

미라클한 첫 날

대망의 2020년 새해 첫날, 6시 알람이 울렸다. 평소였더라면 새해고 뭐고 알람도 꺼놓고 실컷 늦잠을 잤을 터였다. 송년회랍시고 마지막 날까지 술만 진탕 안 마셔도 다행이었다. 


미라클 해보기로 다짐한 첫날이서일까, 눈이 번쩍 뜨였다. 몸도 가벼웠다. 


책 <미라클 모닝>에서 제안한 여섯 가지 습관 중 가장 먼저 명상을 해보기로 했다. 침대 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말이 쉽지, 해본 적도 없는데 눈만 감는다고 알아서 척척 될 리 없었다. 


이럴 때를 위해 유튜브가 있지. 검색창에 '명상'을 적어 넣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명상 대가 선생님들이 화면 가득 줄을 섰다. 보기만 해도 평화로운 썸네일들 사이에 끌리는 영상을 하나 골라 재생했다.


편히 앉아 척추를 바르게 세우고, 양손은 무릎 위에 올려주세요. 
눈을 감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후, 내쉽니다.
고요히 호흡에 집중하세요. 
생각이 떠오르면 저항하지 말고 그 생각을 그대로 바라보고, 보내줍니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선생님 말씀대로 고요히 호흡에 집중하며 머릿속을 비운다. 비운다.

비운다. 


비워질 리가 없다.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이다음엔 뭘 하지,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 할 일들이 마구잡이로 떠오르고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작년 한 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까지 그 짧은 시간, 과거 여행도 다녀왔다. 생각에 저항하지 않는 건 잘했는데 다시 보내주는 건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생각은 나를 집어삼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호흡 세는 법도 잊은 채로 어느새 영상이 끝났다. 화면 속 인자한 명상 선생님은 오늘 하루를 빛내라며 이런 엉망진창 제자마저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명상도 아니고 망상도 아닌 무언가를 끝낸 뒤엔 책상에 앉아 아침 일기를 썼다. 확언이나 다짐, 오늘의 할 일이나 감사한 일들을 적었다. 막상 적으려고 하니 확언이라는 건 참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의식처럼 했다. 뭐... 나쁜 말은 아니니까... 스스로를 북돋우며.




일찍 일어난 김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동네 카페에 가보았다. 8시, 이제 막 오픈한 카페는 평소 북적이던 모습과 달리 고요하고 한적했다. 나는 새해 첫 손님이 되었다. 누구나 탐내는 구석자리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기분 좋게 아침을 먹었다. 책을 읽고, 영어공부를 하고, 생각들을 정리해 적어 내려갔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조금 소란해졌나 싶어 고개를 드니 어느덧 카페에는 공부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브런치를 먹으러 온 가족, 혼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창 밖엔 어느새 한낮으로 향하는 겨울 햇살이 환하게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시계를 봤다.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몸을 일으키자 4시간 동안 굳었던 관절 여기저기서 소리를 냈다. 아구구 아구구. 삐그덕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여전히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집에 돌아왔다. 평소였으면 점심을 먹고 느긋이 하루를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머리가 개운했다. 아주 시원하고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한 느낌이었다. 


이런 건가, 미라클 모닝의 맑은 기분?!
이제 나도 조금 미라클 해진 건가?!

괜히 신이 난 상태로 따끈한 밥을 퍼서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숟가락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어깨 위로 아주아주 무거운 추가 업힌 듯 몸이 묵직해졌다. 느릿느릿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휴일이라 바삐 할 일은 없었다. 넷플릭스를 켜서 드라마를 한 편 틀어놓고 쏟아지는 눈꺼풀을 추켜올리려 애를 썼다. 


결국 항복. 나는 팔을 휘저으며 침대 위로 기어올라가 푹신한 나만의 요새에 몸을 뉘었다. 그대로 꿀 같은 낮잠을 잤다. 알람도 맞춰놓지 않은 채로 2시간을 꼬박. 눈을 뜨니 어느덧 휴일의 낮이 기울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노곤 노곤한 채로 침대 위를 뒹굴거렸다. 하루는 빠르게 끝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미라클 모닝의 첫 날이 저물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엔  몰랐던 휴일 아침의 풍경을 누리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 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경험은 확실히 색달랐다. 어딘가 시간이 뒤틀린 것처럼 기묘하고 신비로운 일이었다. 안 하던 짓(?)을 하자 몸도 당황해서 졸음을 마구 쏟아내는 바람에 오후엔 헤롱헤롱 했으나 그마저도 기분 좋은 몽롱함이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미라클 모닝도 해볼 만하겠어.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날부턴 다시 평일. 출근이었다. 7시 조금 넘어 출발해야 하니 평소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보기로 했다. 5시 30분 기상 도전. 알람을 맞추고 나니 스스로도 기가 차서 콧방귀가 나왔다.


할 수 있을까, 작심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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