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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Jan 02. 2022

2021년 회고를 시작해(4)

겨울과 그냥, 

한 해가 저물어갈 즈음에는 어쩔 수 없이 어딘가 서글퍼지고 만다. 2021년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해였기에 보내기 더 아쉬웠다. 수많은 추억을 함께 나눈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어김없이 모든 만남엔 이별이 있었다. 아름다웠던 만큼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 다른 때보다 더 소중히 감싸고 잘 포개서 보내주었다. 


고마웠어. 덕분에 나는,




아주 작은 선물


올해 여러 순간에 찾아와 함께 해준 인연들에게 작은 선물과 카드를 전하며 12월의 며칠을 보냈다. 사실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연말을 보내던 중에 누군가 먼저 내게 선물을 쥐어준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작은 선물로나마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특별한 마무리일 것 같았다. 


친구와 지인들에게 니트 양말, 뱅쇼, 평소 즐겨먹는 간식과 작은 소품 같은 걸 선물했다. 받아 드는 모두가 살풋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엽서를 읽으며 무슨 생각인지 희미하게 스치는 미소가 좋았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중학교 아이들에게도 책 선물을 했다. 책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기도 했고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들이 여럿 눈에 들어와서 생각한 소소한 크리스마스 책장 털이 이벤트였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신청해준 덕에 당첨자를 골라내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괜히 뿌듯한 기분이었다. 포스트잇에 짧은 메시지를 담아 책과 함께 전해주었다. 책을 받으며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확실해졌다. 


이건 내가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아 중독되겠구나,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연말에는 바쁘지 말아야겠다. 시간을 내어 고마웠던 사람들을 손꼽아보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야지. 이렇게 작은 노력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이 찬스를 놓치지 말아야지. 




새로운 도전ㅡ그냥 하는 힘


11월부터 12월까지 3주 동안은 커뮤니티 워크숍을 들었다. 뉴그라운드의 코워커스 프로그램이었다. 매주 두 번 만나 주어지는 가이드 문서를 차곡차곡 채워나가며 만들고 싶은 커뮤니티를 그려보았다. 


처음엔 아주 추상적이었던 아이디어가 문서를 채워가며 점차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실컷 스케치만 하고 말겠지, 싶었는데 어딘가 자꾸 간질간질했다. 이번엔, 될지도 모르겠는데,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하며.


물론 3주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냥 또 그대로 끝내고 흘려보낼 수도 있었다. 평소처럼 흐지부지.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여자들끼리 소통하던 슬랙을 우연히 열었다가 한 멤버가 준 메시지가 보였다. 안 그래도 마지막 모임 때 소모임에서 대화를 하다가 연락을 주겠다고 귀띔하기도 했던 분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번엔, 정말, 될지도 모르겠는데. 


단 한 명의 동료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언가 실행하는 데에는. 아직 부족한데, 생각하고 망설일 때에도 함께 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났다. 없던 용기가 생겼다. 사실 뭐든 그냥 하면 되는 거였다. 해보고 안되면 말면 되는 거였다. 두려운 건 실패가 아니었다. 실패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 


그래서 그냥 하기로 했다. 소박하고 귀엽지만, 내게는 아주 크게 남을 이 프로젝트를. 




2021년 마무리 


12월 말엔 일부러 한갓진 시간들을 만들어 찬찬히 2021년을 돌아보았다. 브런치에도, 블로그에도 제각각 회고글들을 올리며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럼에도 놓치고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보내는 순간들이 있겠지.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사주가 어떻든 띠 운세가 어떻든 내 나름대로는 2019년부터 2021년 간 삼재를 겪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크나큰 고통이 난데없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후려쳤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쳐가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하다가 수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지난한 고통과 마찬가지로 괴로웠던 깨달음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진정한 휴식이 찾아왔다. 2021년은 그런 해였다. 내게 아주 커다란 휴식이자 보상 같았던 시간들. 마음이 자꾸 조급해지고 불안함이 몰려올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려보았다. 


빨리 가야 하는 거야? 내게 되물었다. 아니, 뭐든 빨리 해치워버리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느긋하게 나아가고 싶었다. 잔잔한 강물 위를 따라 흘러가고 싶었다. 그 곁을 찬찬히 걷고 싶었다. 


대신 꾸준히. 한 걸음이라도 꾸준히 나아가자. 다짐했다. 잘 비우고 채웠으니, 계속 가보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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