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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Jan 16. 2022

너의 아침

 창밖은 여전히 어둡지만 누나가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어둠이 다가오고 사라지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어쩌면 내 멋진 수염이 알아채는 걸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엔 깜깜할 때가 제일 재밌었는데. 인간들은 어둠을 무서워한다. 어둠이 오면 모두 푹신한 이불 속에서 꼼짝도 않고 잠만 잔다. 

 알람이 울린다. 침대 위를 뒤척이는 움직임이 방문 너머로 들려온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간다. 앞발로 움직이는 벽을 밀어낸다. 이 거추장스러운 벽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누나는 일어날 낌새가 없다. 안 되겠다. 내가 해결해야겠군. 일어나, 말하며 누나의 배를 밟아준다. 특급 기상 마사지가 반가웠는지 누나의 큰 손이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귀찮다 정말. 이런 것까지 해줘야 하다니. 그래도 못이기는 척 곁에 누워준다. 누나의 목덜미에선 좋은 냄새가 난다. 몸에서 나도 모르게 구룩구룩 소리가 난다. 옛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누나의 겨드랑이를 앞발로 꾹꾹 누르고 있다. 에잇 맨날 이렇게 된다니까.

 침대 밖으로 나온 누나는 매일 아침 물이 콸콸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곳에 들어간다. 나도 가끔 그곳에 갇혀 물고문을 받는다. 그럴 때면 내 멋진 털이 축 젖어버리고 만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끔찍한 일이다. 누나가 잡아먹힐지도 모르니 움직이는 벽 옆에 놓인 탁자에서 대기한다. 잠시 후 누나는 털이 흠뻑 젖은 채 밖으로 나온다. 무슨 일이냐고, 왜 또 거기 들어간 거냐고 묻는다. 누나는 대답없이 거대한 솔로 내 이마를 문지른다. 


 아침 일과는 아주 규칙적이다. 누나는 책상 위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 침대 위에 앉는다. 나는 그녀를 쫓아 책상과 침대를 오가며 쉼 없이 말을 건다. 물고문은 맨날 왜 하는거야? 방금 날 긁어준 건 뭐였어? 왜 아직 뽀뽀를 안 하는거야? 빨리 해줘. 빨리. 이마도 더 쓰다듬어줘야지. 뭐하는 거야. 빨리이.

 침대 위 놓인 네모난 물건에 마구 코를 부벼본다. 누나는 맨날 이걸 앞에 두고 밥을 먹고, 한참을 매만지거나 멍하니 쳐다본다. 도대체 이 시커멓고 딱딱한 게 뭐가 좋다고. 

 눈을 감은 채 한참 앉아있던 누나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곁을 지키고 있다가 책상 위로 얼른 쫓아간다. 누나는 종이뭉치를 펼쳐서 길다란 막대기로 마구 문지른다. 맨날 네모난 것들만 쳐다보는 게 전부면서 누나는 항상 바쁜 척을 한다. 턱 쓰다듬어주는 것도 잊었나보다. 나는 종이뭉치 위에 앉아버린다. 누나가 내 이마에 뽀뽀한 뒤 베개를 갖고 와 무릎 위에 올려둔다. 진작 이럴 것이지. 나는 베개 위로 올라가 누나 턱에 마구 박치기를 한다. 이러면 누나에게도 내 냄새가 묻는다. 

 베개 위에 올려진 누나의 양 팔 사이에 몸을 둥그렇게 말아 눕는다. 누나의 오른팔 위로 턱과 앞발을 올린다. 곧 누나의 큰 손이 이마와 귀와 턱 아래를 긁어준다. 시원하다. 아침 마사지는 언제나 기분 좋다. 집 안 곳곳을 정찰하고 분리수거함에 들어있는 비닐을 탐색하느라 바쁜 새벽을 보냈지만 아직 졸립진 않다. 눈을 감고 있지만 자는 건 아니다. 


 드디어 누나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얼른 일어나 바닥에서 기지개를 켠다. 아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얼른 줘. 얼른. 누나를 독촉하며 얼른 주방으로 뛰어간다. 누나가 슬리퍼를 끌며 쫓아온다. 그러고 보니 어제 식탁에 새로운 봉투가 나타났다. 다시 한 번 가서 냄새를 맡아본다. 앗 역시 이 냄새다. 시큼한 냄새. 으 인간들은 왜 이런 걸 먹는걸까. 지독해. 

 누나가 찬장을 열어 캔을 꺼낸다. 저건 내거다. 오늘은 무슨 맛일까. 누나는 매번 캔을 줄 때마다 이상한 흰색 가루를 넣는다. 누나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다 안다. 그냥 모르는 척 해줄 뿐. 딸깍. 누나가 캔을 딴다. 맛있는 냄새가 쏟아진다. 얼른 줘 얼른. 가루도 넣고 얼른. 얼른. 누나가 몸을 돌린다. 마음이 급하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가야지. 항상 놓는 곳으로. 누나가 그릇을 내려놓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다. 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단 냄새부터 맡아본다. 가끔 영 내 취향이 아닐 때도 있다. 그럴 땐 냄새만 맡고 주방에 쫓아가 누나한테 얼른 다른 걸 내놓으라고 항의한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모르는 척 내 이마에 뽀뽀세례만 퍼붓는다. 누나는 참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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