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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May 13. 2022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끗질의 시작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 '끗질'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릴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나한테도 필요해, 언니


‘언니들 이야기 실컷 듣고 싶다. 기왕이면 인터뷰집도 내고 싶어.’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싹을 틔운 건 역시 언니들이었다. 언니들은 퇴사 이후 신청한 여성센터 수업에서 만났다. 3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그들은 대부분 ‘엄마’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마트에서 매일 마주치고 있지만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던, 나와는 별 상관 없다고 여겨왔던 사람들.


퇴사 전까진 매일 중장년 남성들을 마주해야 했다. 대표, 이사, 부장, 대리, 주임, 사무관, 연구원, 박사님 등등. 온갖 칭호에 가려진 '아저씨'들. 그들의 대화는 대체로 돈, 부동산, 군대, 자기자랑, 마누라 욕, 여자 얘기였다. 나열하는 도중에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이야기들. 성희롱은 덤이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도 무해한 척하는 그들의 손길이 닿을까 온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긋지긋했다. 좀처럼 눈밖으로 사라지지 않는, 나와는 정말 상관 없는 사람들.


언니들 사이에서 처음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꼈다. 남초 고인물처럼 10여년을 살아온 나에겐 어깨에 힘을 푼 것부터 감격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무심코 툭 튀어나오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빳빳했던 어깨 대신 광대가 뻐근해졌다.


언니들의 이야기는 평범해보이는 일상도, 과거에서 불러온 추억도 모두 발군이었다. 분명 커다란 부침을 겪었을 텐데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소한 이야기에도 깔깔 웃었고, 빵은 항상 종류별로 산더미처럼 쌓아 나눠먹었다.


언니들 그동안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궁금했고 억울했다.


그렇게 퍼즐 조각을 찾듯 언니들의 이야기를 주웠다. 알람에 미련없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언니들을 보며 애들 학원은 왜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는 걸까, 툴툴거리며 돌아왔다. 아까웠다.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정작 언니들은 아쉬워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내가 붙들고 싶었다.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술잔을 앞에 둔 채 이효리가 엄정화에게 물었다. 엄정화는 작은 목소리로 “몰라...” 하다가 이윽고 “술 마셨지”하며 푸흐흐 웃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효리는 눈물이 난다며 엄정화를 따라 웃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나도 울고 웃었다. 인터뷰집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확신이 되었다. 


맞아, 우리에겐 모두 언니가 있어야 해. 술 아니면 언니. 아, 웬만하면 언니. 

술과 언니면 진짜 완벽하고.





회사 밖 동료를 만나다 


2021년 11월, 뉴그라운드의 코워커스(Co-workers) 프로그램을 통해 4~50대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이름은 '끗질'이라고 지었다.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힘을 가하다'라는 뜻의 동사 '끗다'를 변주한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로고 ㅡ 언니들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끝없는 파장을 일으키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맞아, 나는 언니들을 옮겨놓고 싶은 거야. 거기 말고 여기.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말고 앞면. 남편과 아들의 서포터 말고 히어로. 부장과 이사의 어시스트 말고 스트라이커로.


동 프로그램에서 희경을 만났다. 중장년 여성 대상 비즈니스를 기획했던 그녀가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올해초 다강과 소진도 합류했다. 그렇게 하는 일도, 취향도 제각각인 2030 여성 넷이 모였다. '끗질 시즌1'의 시작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서 발맞춰 갈 동료가 된 우리는 1,2월 두 달간 매주 비대면(zoom)으로 만났다. 서로를 인터뷰하기도 하고, 각자 원하는 인터뷰, 담아내고 싶은 결과물이 무엇인지 얘기하며 조금씩 구체적 이미지를 그려갔다. 


근데 왜 4050이에요?

어느날 회의 중 누군가 물었다. 함께 묶이기엔 40대와 50대는 전혀 다른 세대처럼 느껴진다고. 사실 그랬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인 우리 넷의 입장에서 보기엔 40대까진 '언니'일 수도 있으나, 50대는 언니보다 '엄마'에 가까웠다. 중장년이라고 퉁치기엔 요즘 40대는 너무 젊기도 했다.


'중장기 비전 수립'  


대부분의 기업 경영 컨설팅 프로젝트의 제목이었다. 향후 5년에서 10년, 기업이 나아갈 미래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전략을 수립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걸 20~30대 여성들의 삶에게도 적용하고 싶었다. 기업의 생명은 5년도 간당간당했지만 우리는 앞으로 20년은 족히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사실 그 기나긴 시간이 막막한 거였다.


지금 하는 일을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비혼을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을까?


인터뷰집의 독자 역시 1차적으로는 우리 또래의 여성들이 될 거였다. 삶의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당장 일상이나 직장에서 사소한 고민부터 중대한 선택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언니'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바로 얼마전까지 해온 세대, 나름의 답을 내린 뒤 그 결과를 몸으로 받아들인 선배, 우리가 닿고 싶은 미래이자 어두컴컴한 발치에 희미한 빛이나마 쏘아줄 수 있는 코앞의 존재 말이다.





언니에게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나요?


그렇게 4050 여성들을 만나겠다고 했지만 사실 누구의 인생이든 연령대로는 쉬이 묶이지 않는 제각각의 삶이었다. 우리는 계속 물었다.   


어떤 언니를 만나고 싶어?
언니에게 어떤 이야기가 듣고 싶어?
그 이야기를 왜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거야?  


우리는 5가지 인터뷰 주제 후보(불안, 비혼, 다양한 가족형태, 자수성가, 고통)를 뽑았다. 치열한 논의에도 개성 강한 끗질 멤버 4명의 의견은 좀처럼 합쳐지지 않았다. 결국 시작부터 우리의 프로젝트를 응원해주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언니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나요?
인터뷰 주제 후보(안) 설문조사 결과(2022.2)


총 113명의 사람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우리의 논의만큼이나 설문의 결과도 치열했다. 참여자들은 '하나만 고르기 너무 어려운데요' '2번에 투표했지만 5번도 궁금해요' '다 해주면 안 되나요?' 라는 말들을 덧붙였다.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모두를 포괄한 하나의 주제를 찾아보자

유효성이라곤 없는 결과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우리만큼이나 우리의 독자도 다양한 언니를 만나고 싶어했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홀로서기'


우리는 '홀로서기'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혼자 힘으로 갈망하여 나아가는 일'이었다. 그 안에 비혼이나 미혼, 독립으로 사는 모습뿐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발돋움이라는 의미까지 담아보고 싶었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홀로서기'한 언니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스스로의 답을 찾은 사람들
평범해서 더 빛나는 언니들


그동안 마주쳐온 숱한 언니들을 돌아보았다. 프로젝트 기획에 영감을 준 언니들부터 비혼으로 멋지게 살고 있는 막내이모를 떠올렸다. 좋아하는 책의 저자부터 인플루언서까지 SNS도 샅샅이 뒤졌다. 한계선은 없었다. 어디든 매력적인 언니들이 넘쳐났다. 우리의 인터뷰이 풀은 순식간에 가득 찼다. 


그 중 8명의 언니들을 만났다. 인터뷰이 선정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피 튀기는 각축장에서 우리는 각자 가장 끌리는 언니를 골랐다.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으로 만난 언니들은 어김없이 환한 미소로 우릴 맞아주었다. 


언니들 여기 다 있었구나

억울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인터뷰는 시작일 뿐이었다. 내 인생의 퍼즐은 이제 언니들로 가득 채워질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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