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의 모습을 차곡차곡 쌓아 다시 걸어봅니다.
기간 : 2019.3.25 - 4.25
장소 : 무중력지대 무악재 2층
인왕산과 안산에 폭 나직하게 안겨,
홍제천과 함께 굴곡진 역사를 겪어 온 동네.
그만큼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하지만 지금도 분주한 삶이 이어지고 있는 동네.
서울 곳곳이 속절없이 변해갈 때,
느리게 걸어가는 동네.
홍제의 모습을 차곡차곡 쌓아 다시 걸어봅니다.
보고 싶은 서울이야기를 전하는 <서울창고>가 <느리게 걷는 홍제展>에 이어 또 한 번 <다시 걷는 홍제展>을 시작한다. <다시 걷는 홍제 展>은 홍제에서 반세기를 살아온 현대 아파트의 원형인 인왕아파트, 인왕궁아파트, 안산맨숀, 원일아파트, 유진맨숀의 상가아파트들을 중심으로 지역의 모습을 담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면면들은 언뜻 시간이 멈춘 듯 보이지만, 홍제동은 홍제만의 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홍제동을 오랫동안 지켜온 터줏대감들, 분주히 돌아가는 홍제동의 일상, 그리고 오래된 곳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청년들의 이야기까지 만나 볼 수 있다.
느리게 걸어온 홍제동에 꽤 커다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안산과 인왕산 산줄기의 높은 쪽부터 고층 아파트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건물이 허물어지고 공사하는 풍경이 다분하다. 실제로 주민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재개발을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서울창고의 기록을 공유하는 전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창고 전시와 함께 우리의 동네 홍제동을 다시 한 번 걸어보자.
전시는 이전 무악파출소를 리모델링해 청년들의 창작·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무중력지대 무악재'에서 기획했다. 홍제동을 청년의 시선으로 담은 전시를 열기에 더욱 의미깊은 공간이다.
1층엔 굿즈 비치, 엽서 쓰기, 브런치 연재글<느리게 걷는 홍제>가 전시되어있고, 2층엔 본격적인 전시 공간으로 홍제동 정경 사진과 홍제동 주민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영상 <인왕아파트x인왕궁아파트x안산맨숀>과 <원일아파트>, <유진상상프로젝트>, <유진상가X셰어하우스 우주>이 전시되어 있다. 홍제동 정경사진은 홍제동의 상가아파트를 중심으로 지역과 공간의 일상풍경을 액자 속에 담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동네를 이방인, 서울창고의 시선으로 담아보았다.
홍제동 상가아파트들 중, 유진맨숀과 원일아파트는 기존의 인왕시장과 결합되면서 상가의 기능이 특히 활성화되었다. 이 일대를 지나가면 북적이는 시장 정경 위에 아파트가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다. 나이 든 주민들에게 이곳은 명동과 같은 쇼핑센터이다.
무악재 올라가기 전, 인왕산자락 밑에 위치한 인왕아파트와 안산맨숀, 인왕궁아파트는 보다 주거의 기능이 특화돼있다. 과거엔 1층에 입주했던 상가들, 미곡상, 양장·양품점, 잡화상, 식료품점, 미장원, 식육점 등이 활성화됐었지만, 지금은 많이 쇠퇴하여 일반 아파트의 모습처럼 보인다.
안산맨숀의 경우 옥상의 커뮤니티 공간인 텃밭과 천장이 뚫려 빛과 바람이 통하는 사다리꼴 중정을 지닌 우수한 건축적 구조가 돋보인다. 도시의 외양이 급변하던 시기, 전원 생활을 아파트 도심 공간에 담아내려 애쓴 흔적이 느껴진다.
홍제동에 위치한 상가아파트들을 가만히 보면 이 아파트들에는 자연과의 조화, 그리고 입주자의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자연의 햇빛과 바람을 도심 속에 잘 담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곳 입주자들이 이웃들과 소통하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존의 지형지물과 이질적이지 않게 들어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 고민의 결과로 옥상 텃밭과 자연 빛이 담기는 중앙정원, 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상가, 널따란 테라스 같은 복도가 탄생했다.
비록 이 아파트들이 명성을 떨치던 것이 신도시 건설, 주택 공급 붐으로 20년 정도 밖에 안됐을 테지만, 건물의 단단함은 아주 견고하여 이곳에서 반세기를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홍제동과 세월을 같이하며 어느새 콘크리트는 더욱 동네와 같이 묻어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잊혀졌다.
재건축, 재개발 논의가 오래전부터 한창이었다고 한다. 유진상가는 또한 개천 위에 지어져 개발 허가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개발을 바래온 주민들에게 무용한 취급을 받는 꼴이 되었다. 그 위에 어디선가 나타난 젊은이들은 새로운 상상을 펼친다. 유진상가 2층의 넓은 중정에서 재즈 공연을 하고, 뮤지컬 공연을 한다. 유진상가를 무대로 오래된 것의 가치에 물음을 던지는 젊은 예술인들의 모습도 담겨있다.
홍제천만큼 굽이굽이 굴곡진 역사를 걸어온 동네 홍제이다.
많은 이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이고, 또 다시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다.
언제든 다시 보지 못할 풍경이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요즘.
<다시 걷는 홍제展>에 발걸음하여 홍제에 담긴 도시 삶의 원형을 감상하고 미래의 도시에 물음을 던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느리게 걷는 홍제>를 마치며.
에디터 후기
홍제동에 추억이 담긴 이들에겐, 소중한 기억창고로. 또 홍제동은 잘 모르지만 함께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오래된 동네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