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상가, 유진맨숀, 유진아파트. 유진상가의 다양한 이름이다.
건물의 일부는 폭파되어 사라졌는가 하면 페인트칠이 벗겨진 모습과 새로 지은 느낌이 물씬 나는 모습이 공존한다. 건물 바로 위로는 고가도로가 지나간다. 앞에서 보면 분명 땅 위에 있는데 뒤에서 보면 개천 위에 떠 있다.
홍제동의 유진상가다.
홍제동의 랜드마크라는 별명을 가진 유진상가는 홍제동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홍은동으로 분류된 홍제천 위에 있어서인지 행정구역상으로는 홍은동으로 표기된다. 유진상가, 유진맨숀, 유진아파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서울의 요새화라는 이름아래 방공목적으로 지어졌다가, 최고급아파트라는 전성기를 맞이했다가, 고가도로 설치와 함께 B동의 4-5층이 잘려나가기도 했다. 현재 유진아파트에는 B동 신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한 기업들, 1층 유진상가의 상인들, 그리고 그 터전을 지켜온 A동 주민들이 살고 있다. 유진상가에 얽힌 역사들이라면 많이들 들어봤을 터, 서울창고는 유진아파트에 살며 다사다난한 역사를 몸소 겪어온 주민 분들을 만났다.
이은향 선생님
1984년부터 유진아파트에 거주한 이은향님은 고가 도로가 생기기 전, 아파트 광장을 통한 B동 주민들과의 교류를 그리워했다. 현재 B동은 4,5층이 사라지고 신지식산업센터가 들어와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상태다.
유진아파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가요?
고가도로 생기면서 B동이랑 갈리기 전에, 같이 정말 노력하다가 결국 우리만 남았던 것이요.
그 당시 이야기 좀 들려주시겠어요?
만 35년 정도를 여기 와서 살았어요. 제가 제주 출신이거든요.
동생 넷을 유학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에 와서, 동생들과 알콩달콩 하면서 살았어요.
B동에 고가 도로가 생기기 전에 B동 주민들하고도 굉장히 즐겁게들 살았어요.
정말 이 광장을 통해갖고 서로 교류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장에서 걷고 얘기하고들 했었는데...
시에서 유진상가에 관여하면서 고가도로 공사가 시작되려고 할 때,
B동 A동 사람들이 모여서 구청 바로 가기 전에 있는 홍제천 바닥에 앉아 갖고들 농성을 했었어요.
B동 주민하고 우리하고 똑같이 농성을 했는데 결국 B동은 나가고 저희만 남았어요.
유진아파트의 어떤 점이 가장 좋으셨나요?
난 2층 광장이 좋았어요. 저녁에 걷기도 좋았고. 2층 광장도 좋고, 뭐 복도도 넓어서 좋고. 구조도 다른 아파트랑은 완전히 다르고, 복도가 있음으로써 (주민들과) 교류가 됐죠.
복도를 보면 가슴이 환해. 뻥 뚫린 것처럼 환해요.
갑갑한 감이 하나도 없고. 또 여기 창틀도 크게 고쳐갖고 앞에 쳐다봐도 시원하고.
송상옥 사장님
유진상가 A동 아래에는 인왕시장과 이어진 곳에 청과가게가 주욱 늘어져있다. 설 직전에 찾은 유진상회는 대목 준비로 부산했다. 부부이신 유진상회의 사장님은 유진아파트에 거주하면서, 1층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신다.
유진상가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 가게는 83년도에 들어왔고요. 아파트는 87년도에 이사 왔어요.
그때는 이제 중앙난방이었지. 개별난방이 아니고. 중앙난방.
여기 장사하시면서 제일 좋은 추억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뭐 일단 장사하는 사람이니까, 장사가 잘 될 때 그때가 좀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전두환 대통령 시절, 그 때가 아주 제일.
그때는 여기 수박 막 하루에 2채씩 팔고 그랬어요.
활성화가 잘 됐을 때 제일 좋았던 거 같은데, 사람도 많이 다니고.
여기가 그때는 도매를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구색도 안 맞고 그러니까 다른 시장으로 많이 빠지고 그렇지.
가게 바로 위가 집이어서 편하시겠어요.
그렇죠. 뭐 차 탈 일도 없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산도 없어도 되고
집에 가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지 뭐. 그냥 쫙 올라가면 되고.
또 문을 닫는 시간도 없고 그러니까
최언열 감사님
유진아파트에서 감사를 맡고 있는 최언열님은 홍제동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인왕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어느새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생각나는 기억이 있으세요?
어릴 때 김신조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 밤이었는데, 막 총소리가 들렸어.
나중에 지나서 알고 보니까, 여기 자하문(紫霞門)터널 위에서 교전이 있었던 것이더라고요.
밤이니까 어린 시절에 그런 소리가 크게 느껴졌죠.
이제 세월이 흐르는 게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저도 나이가 60이 넘어버리고.
항시 젊을 줄 알았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버렸더라고.
물론 저보다 더 연배가 높으신 분들도 많지만, 지금은 이제 ‘너무 빨리 흘러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신조사건: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民族保衛省)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사건.)
B동에 무중력지대를 비롯한 청년공간이 들어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파트 광장에서 행사들도 하던데.
저는 아주 대환영이에요.
대환영이고 주변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은 거 같아.
도시관리공단이나 젊은 친구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무실도 저렴하게 임대도 해 주고.
이렇게 좋은 일을 국가에서 좀 더 활성화시켜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유진상가는 다양한 구성원이 다채로운 기억을 가지고 사는 공간이다. 누군가는 왕년의 유진아파트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교류가 활발했던 추억을 그리워한다. 처음 유진상가를 봤을 때는 거대한 크기에 놀랐고, B동의 깔끔한 내부에 놀랐다. 그리고 A동의 견고한 아파트와 넓은 구조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유진상가는 들여다 볼 수록 이야기도, 매력도 많은 건물이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유진아파트는 다시 맞을 전성기를 기다린다.
Editor 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