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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May 14. 2019

삶을 가꾸는 어느 아파트 관리소 이야기

이름처럼, 고은 아파트 2


(1부의 내용에서 이어집니다. 1부 보러 가기)


<느리게 걷는 홍제> 매거진 연재를 하면서 만난 홍제동 일대의(홍제동뿐만 아니라 이 당시 서울 곳곳에 지어졌겠지만) 상가아파트들은 그 안에 마을과 전원생활을 품고 있었다. 그 형태는 거대한 콘크리트 일지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밭을 일구고, 이웃들과 떡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최초의 아파트들은 지어졌다. 집집이 마주 보고 있는 구조, 함께 가꿀 정원을 내부에 들여놓고, 주변 지형을 고려한 동의 배치 등. 그리고 주변 도로와 지형도 모두 바뀌어버리는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이젠 주민과 함께 나이 들어버린 건물은 막연한 기다림 속에 놓여있다.   

  

그런데 고은아파트는 조금 달랐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활기찬 건강함이 느껴졌다. 그 건강함이 물론 오래된 신체 능력의 제한 속에서 이겠지만, 분명 다른 1세대 아파트들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단지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아파트를 살피는 관리소장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보통은 경비 아저씨가 계시는데, 이곳은 여성 분이 관리 일을 맡고 계셨다. 고은아파트의 숨은 이야기와 관리소장님의 아파트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드렸다.

아파트 게시판이 햇빛에 반짝인다.

고은아파트, 고은초등학교, 이름을 짓게 된 이유를 아시나요?

저쪽 고은초등학교 자리가 화장터였어요. 옛날에는 여기서 화장해서 저 초등학교 뒤에가 고은산인데, 거기 다 뿌렸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거기서 이름을 딴 게 아닐까요?

     

원래 고향은 어디신가요?

원래는 부산이에요. 결혼하고 애들 교육 문제로 서울을 왔죠, 경희궁, 영천시장 앞 재개발되기 전에 교남동, 송월동에서 살았었어요. 그러다 중국에서도 잠깐 심천에서 몇 년 살았어요. 아이 유학생활 때문에요. 그러고 다시 서울 올 때 홍제동으로 왔죠.


그럼 이 동네, 모래내로를 알고 계셨나요?

이 길은 전혀 몰랐어요. 홍제동 앞쪽인 유진상가, 인왕시장 쪽만 알았지. 이 뒷길은 몰랐어요. 고은초등학교는 들어본 거 같은데 아파트는 더욱 눈에 띠지 않아 몰랐어요. 고은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을 하게 되면서 여기 모래내로는 처음 왔어요. 2년 전에. 이제 햇수로 3년 차예요. 2017년 2월에 왔으니까요. 다른 데서 일을 할 때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왔어요. 그리고 집이랑 가까운 아파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죠, 나이가 많고 여자이고, 또 정년이 없으니까 관리사무소 일을 하려고 찾아왔죠.     

아파트 외벽. 붉은 벽돌이 겹겹이 쌓여있다.

처음 오셨을 때 이 곳의 모습은 어땠나요?

빨간 벽돌 아파트라서 보기에 참 좋았어요. 그거에 반해서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오래되다 보니까 내부 상태는 꽤 녹슬어 있었어요. 지금은 열심히 수리를 하고 있어서 많이 깨끗해졌어요. 이건 뭐 제가 혼자 한 게 아니고, 같이 잘 가꾸자고 마음을 모아서 이렇게 수리하고, 정비하면서 관리를 하게 되었죠. 같이 한 거죠.     


그럼 아파트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셨겠어요, 일하시면서 또 뿌듯한 순간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나는 가끔 너무 주민들하고 내가 가깝게, 편하게 지내고 하니까 주민들도 잘해주셔요. 그래서 저도 내가 여기 주민인지 관리소장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월급 받고 여기 일한다기보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은 또 잘 모르는 게 많으니까 제가 도와줄 부분이 많죠. 원래는 아파트 일이 공용공간만 관리하도록 하고 전용공간은 각자 관리하는 건데. 저는 딱 구분하지 않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려고 해요. 하물며 할머니 티비 리모컨이 안된다고 저를 찾으시는데, 오죽 답답하면 그러시나. 하고 제가 가서 도와드려요. 혼자 사시는 분들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관리사무실에 놓여있는 할머님들의 부침개와 떡.

젊은 분들이 많이 사시는 것 같던데요? 주민들끼리의 교류는 어떠한가요?

여기는 세입자가 많이 살아요. 역세권에, 학교도 가깝고, 젊은 사람들 살기가 좋죠. 아기들 키우기가. 신혼부부들이 요새 많이 들어와요. 그래도 할머니들 분들도 많고요. 30년 40년 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래도 젊은 주민들도 어린이집 보낼 때, 애들 같이 놀아줄 때 서로서로 교류하는 것 같아요. 할머니들은 오후 되면 내려오셔서 도란도란 수다하면서 다녀요. 여기 정원 주위를 뱅글뱅글 돌아다니며 운동하고요.

(에너지 자립 마을은 어떤 활동을 하는 건가요?)

같이 미세먼지 줄이기 캠페인을 하는 거예요. 작년에는 행사를 했는데, 주민들 주차장에 텐트 치고 부스를 차려서 애들이랑 부채 만들기, 음식 만들어 먹고 했어요. 다음 주에도 하려고 해요. 친환경 비누 만들기, 수세미 만들기, 멀티탭도 무료로 드리고 등등. 많은 활동을 같이 하는 거죠.

(그러면 소장님이 직접 구 주민사업을 신청해서 진행하는 건가요?)    

주변에서도 많이 알려주고 그래요. 여기 정원도 보조금 받아서 예쁘게 가꾸고 있어요.

정원이 새로 심은 꽃들로 가꾸어져 있다.

요즘 도시재생이 화두잖아요. 혹시 오래된 아파트를 관리하시는 분으로써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기도 제가 볼 때는 기초는 튼튼히 공사돼있어요. 그런데 40년 전에는 전자제품도 없고, 건축적으로 하중이란 게 있잖아요. 전체 무게가 얼마 이하라는 걸 계산해서 지었을 텐데. 지금은 각 가정마다 전자제품도 크고 많이 들여놓죠. 기준 자체가 다른 거죠. 또 지금은 설계도면도 없어서, 배관 수리에 어려움이 있어요. 전깃줄이 엉켜서 화재 안 날까 제일 걱정이에요. 전기 사용량이 많이 또 늘어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이용하는 것에 맞춰서 수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     


도시가 어떻게 바뀌면 좋겠다는 바람이나 생각이 있으신가요?

도시나 시골이나, 공동주택은 편리함을 추구하지만, 인간적인 것은 없어지는 추세잖아요. 우리 아파트는 오래돼서 그렇진 않지만, 다른 아파트는 그런 것이 잘 없잖아요. 이웃들하고 인사도 안 하고.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젊은 사람들은 극단적 이기주의도 있기도 하고. 너무 삭막하게 변해가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는 곳도 너무 베드타운처럼 될 것 같고. 다들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만 들어오잖아요. 최근에 아파트 내에서 갑질 문화도 발생했죠 또. 그런데 모든 아파트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닌데, 일부분만 그러겠죠. 그래도 걱정이 많이 되죠.     


앞으로도 계속 이 아파트를 가꾸고 계실 건가요?

제가 있고 싶다고 해서 있는 게 아니죠 뭐. 그래도 생각은.....  여행 가는 걸 좋아해서, 제주도, 남해, 강원도 가서 각각 아파트 다니면서 2년씩 살면서 돌아다닐까 봐요. 지리산 밑에도 2년 있고. 그럼 좋을 것 같아요. 또 어떤 분들은 말해요. 뭐하러 여기 계속 있냐고. 더 좋은 곳도 많은데. 근데 저는 어르신들하고 정도 들고, 집도 가깝고, 할머니들이 '소장님, 오래오래 계셔요 그래요.' 그럼 네 그러고 말죠(웃음).      


마지막으로 고은아파트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고은아파트는 아파트가 아니에요. 완전히 도시 속의 시골이에요. 어르신들도 아파트 산다고 생각 안 해요. 부침개 만들어서 앞에서 먹고 있고. 서로 누가 돌아가신 분 있으면 다 알고, 인사하고 그래요. 

저기 앞에 아파트보다 여기가 훨씬 좋아요. 편안하고. 가족같이 지내서.      

모래내로 풍경. 주변의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단지 안 숲 속 벤치에 앉아 소장님과 나누는 대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지나가는 주민들을 챙기시고 안부를 물으셨다. 소장님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듯했다. 주민들도 소장님을 계속 찾았다. 짧은 대화 속에도 우스갯소리 농담을 편하게 나누는 것을 보니 보통의 친밀함이 아닌 것 같았다.


  '저는 소통을 다해요. 이렇게 가끔 농담도 따먹고 해요.'


얘기를 듣고 나니 소장님이 이곳 소통의 연결 고리처럼 느껴졌다. 주민들 사정을 다 봐주고 살갑게 반겨주는 모습은 도심 한가운데, 마치 포근한 시골집을 마련해준 것 같았다. 


갈수록 현대의 주거공간은 높아지고, 대단지로 넓어지고 있다. 각박한 도시 사회 문제가 거론된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저녁 뉴스 속 보도되는 이웃 간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개인 사생활 존중의 문화와 공간의 물리적 변화가 맞물리며, 또 짧은 입주 기간 덕에 서로를 모른 척, 금방 떠나갈 것처럼 머물다 간다. 그렇게 다들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곳에는 서로를 반기며, 순간의 삶을 열심히 가꾸어가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40년이 되어도 바래지 않고, 서로를 보듬고, 낡은 곳은 고쳐나가며, 순간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름처럼, 고은 아파트> 마침.



글  서영

사진  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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