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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Jun 04. 2019

27층 주상복합아파트보다 더 가치 있는 것

세운 글로벌 포럼, 도심제조업의 가치를 논하다.

1부 : 서울의 한 복판, 도심제조업 축제가 벌어지다 에서 계속됩니다.


뉴타운 재개발의 부활?     


을지로는 몇 년 사이 숨은 맛집들과 개성 넘치는 공간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뜨는 동네’로 급부상하였다. 뜨는 동네는 ‘홍대앞’부터 시작하여 각종 ‘-리단길’, ‘-촌’, ‘-로수길’이 돌고 돌아 서울의 한가운데 을지로로 오게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뜨는 동네가 어떻게 시작되고, 번성하고, 쇠퇴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몇 차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쫓겨나는 이들(아이러니하게도 뜨는 동네를 만들게 된 문화예술인, 임차인 자영업자들이다.)의 피해와 갈등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학술 용어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서 그런지 이번 을지로의 젠트리파이어들(공간운영자, 문화예술인 등)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접근성을 낮춘 것이다. 더 알려지지 않도록 숨어 들어가 간판도 두지 않고, 인쇄골목, 제조업 골목의 사이사이, 더 높은 층으로 위치를 옮겼다. 지도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곳들이 많다. 정말 아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는 진입장벽을 설치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정보를 숨기는 것은 절박함 때문이다. 이들은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을지로에 숨어들었다. 더 이상의 임대료 상승과 내쫒김은 피하고 싶다.

을지로의 대표적인 문화공간 신도시와 평균율 (출처 : 왼쪽부터 신도시 웹사이트, 평균율 인스타그램)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을지로는 재개발된다. 임대료의 상승이나, 프랜차이즈 상가의 입점이 아니라 을지로 제조 골목 자체가 사라진다. 이곳에는 초고층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선다. 2014년 결정된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역은 세운상가 건물에 한해서였다. 주변의 노포 골목들은 여전히 1979년에 지정된 재개발 대상 지역이었다. 세운 3-1구역인 입점동은 이미 철거되었고, 이후 세운 3구역에는 27층의 998세대 규모의 주상복합단지가 들어선다. 세운 4구역도 역시 지하 6층, 지상 18층 규모의 건물이 9개 동 들어설 예정이다.

출처 : 서울시 세운 재정비촉진계획 구역도, 힐스테이트

실제로 다시세운프로젝트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산업재생과 공동체 재생이 가리키는 부분은 근대 주상복합 건축물인 세운상가, 대림상가, 청계상가의 연결과 복원, 리모델링에 한해서이다. 주변 재개발지역인 을지로 골목에 한해선 재생사업이 해당되지 않는다. 2014년엔 세운상가의 존치만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운 글로벌 포럼 : 도시와 제조업의 미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조감도엔 세운상가 주변에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세운상가 도시재생 조감도)


세운 글로벌 포럼 도시와 제조업의 미래     


세운 글로벌 포럼은 도시기술장의 연계행사로 세운협업지원센터와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 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에서 함께 주관하고 주최한 행사로 세션 1은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제조업 골목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현재 진행 중인 재개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었다. 발제는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의 소준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박은선,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 권규상, 세종사이버대 자산관리학부 교수 강우원이 차례로 이어갔다.     

포럼 행사 포스터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대학교 세운캠퍼스)



1. 제품 X의 탄생, 청계천 제조과정 추적기


첫 번째 소준철 연구원은 <제품 X의 탄생, 청계천 제조과정 추적기>라는 제목으로 하나의 제품이 탄생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공정과정과 업체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를 추적하는 과정을 발표했다. 2달 동안 연구하고 방문하며 직접 상인들로부터 체득한 참여관찰 정보로 구성되었고, ‘청계천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업체의 분류와 제품을 구성하는 각종 부품들 만큼 세세히 해당 지역의 산업공정의 긴밀한 연관성을 알 수 있었다.     

소준철 연구원의 발표 모습

연구에서 제품 X는 ‘깔때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대상 제품이 주문 들어오는 것부터, 금속 정밀 과정과 완제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 거쳐지는 기계와 공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만큼 걸쳐지는 업체도 많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깔때기지만, '주문'에서부터 '완제품'이 식품업체로 '가기'까지 오랜 여정이 ‘청계천시장’ 내에서 효율적으로 협업이 이루어졌다.     



2. 페미니스트 풀뿌리 도시계획: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산업생태계 특성을 고려한 도시재생


다음으로 순서를 받은 디렉터 박은선은 <페미니스트 풀뿌리 도시계획:청계천 을지로 일대의 산업생태계 특성을 고려한 도시재생>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였다. 박은선 디렉터는 도시에 대한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인식론적 영역에 물음을 던지는 것부터 발제를 시작하였다. 이어 현재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민 활동가와 상인들이 모여 결성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활동하고 연구한 내용들을 발표하였다.

박은선 대표의 발표 모습

연구 내용에 따르면 상인들이 꼽은 청계천 을지로 지역의 장점은 협업이 가능하고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실제 네트워크 양상을 살펴보면 세운상가 곳곳에 포진하여 연결망이 구축되어 있었다. 이 연결망은 부분적으로 재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훼손된다. 또 재개발이 진행되면, 일자리 1만 여 곳이 사라지고 대략 2만 5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연구자료. 수평적이고 유기적인 산업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있어 협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공 :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

그 외에도 칠, 주물, 프레스와 같은 주요 기계 종목은 단층이 아니면 입주하기가 힘들어 이주 문제를 지니고, 그동안 을지로에 제조업 지구에 의존해 왔던 서울 기반 활동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예술 작업에도 차질을 빚는다.     



3. 도시형 제조업을 위한 산업정책과 공간정책의 간극 메우기


바로 이어서 국토연구원의 책임연구원 권규상은 <도시형 제조업을 위한 산업정책과 공간정책의 간극 메우기>라는 제목으로 현 문제에 대한 대안책을 제시하였다. 권규상 연구원은 제조업이 사양산업이 아니지만, 청계천 을지로 일대가 타 주거 상업 용도 간 경쟁 속에서 재개발 압력에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권규상 연구원의 발표 모습 (출처 :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
인쇄소비량 추이를 보면 안정적으로 성장함을 알 수 있음. (출처 : 권규상, 2018, <일자리 창출형 도시재생 전략: 도시형 제조업 집적지역 재생을 중심으로>)
도심지역 제조업 집적지역이 도시재생 사업의 사각지대임을 보여줌(출처 : 권규상, 2018, <일자리 창출형 도시재생 전략: 도시형 제조업 집적지역 재생을 중심으로>)

또한 현재 산업정책의 흐름 속에 소외된 제조업 지원 정책을 지적하였고, 공간정책에서도 산업단지가 아닌 개별 집적지인 청계천 을지로 역시 소외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발표에 따르면, 도시형 제조업 집적지역에 금융, 기술지원 정책만이 아니라, 공간 정책이 함께 지원되어야 한다. 재개발과 도심재구조화의 불가피함 속에서 이전 가능한 것과 이전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여, 수직적 구조의 복합건물에 각 업체들을 입주시키는 지원을 통해 산업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새로운 공간을 마련할 것을 제안하였다.     



4. 서울 도심부 산업지형의 계보와 함의


마지막으로 강우원 교수는 <서울 도심부 산업지형의 계보와 함의>라는 제목으로 도심 제조업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발제하였다. 서울 도심 내 제조업을 분산시키는 정책과 집적을 통한 각종 도심 문제와 불경제 속에 많은 제조업들이 공장을 이전하고, 서울의 중심은 새롭게 재편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압박 속에서 을지로 제조지구가 남아있을 수 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앞선 발제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바로 Network production System 때문이다.     

강우원 교수의 발표 모습 (출처 :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

높은 기술을 지닌 장인들이 이룬 네트워크 체계는 질적, 시간적, 비용적 유동성을 보장해주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지니는 제약은 해당 기술 장인들은 이미 고연령이 대부분이며, 기술의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를 해결하지 위해 을지로 지역의 도시재생은 이러한 도심 제조업의 경쟁력은 살리고, 제약점을 보완하는 젊은 기술력을 공급하고, 스타트업 커뮤니티와 더불어 혁신의 장을 연결시키자고 발표자는 제안했다. 끝으로 재개발의 압력 속에서 을지로 제조업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제 후에는 서울대 지리학과 김용창 교수가 좌장으로 토론을 이어갔다.

 


청계천을지로 지역이 재개발되면 안 되는 이유     


청계천·을지로 제조업 지구를 대상으로 서로 다른 위치의 연구소와 기관에서 연구한 내용들은 현재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조금씩 입장이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청계천·을지로 제조업지구가 지닌 가치에 대해선 공통적으로 입을 모았다. 청계천·을지로의 제조업지구가 낙후한 물리적 환경을 가졌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사양산업이 아니고, 오히려 고기술 집약 지역으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산업생태계 연결망의 우수성으로 상품 생산 공정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었다.     

3D 프린터를 제작하기 위해 거치는 을지로 제조업 일대의 공장 (출처 : kbs 시사기획 창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젊은 기술자들과 맞물려 충분한 혁신의 가능성을 꾀할 수 있다. 실제로 kbs 시사기획 창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와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매거진에 따르면, 지역 기술 장인들은 그들의 집약적 지식을 젊은 메이커 그룹에 조언을 통해 전달한다. 이는 젊은 메이커 그룹에 그 자체로 컨설팅이다. 상당한 성장 동력이 되는 것이다.

도시 분야 전문가들과 세운상가 일대의 상인들이 청계을지로 제조업 지역 가치에 대해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 kbs 시사기획 창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

정리하면, 세운상가'만'의 '다시 세운' 재생 사업이 벌어지는 것은 실제로 큰 효용이 없다. ‘메이커시티’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다시세운프로젝트를 가꾸었지만, 진정 메이커시티를 갖추기 위해서는 지역 산업생태계가 함께 보존되고 재생되어야 한다. 이 지역은 자본 경쟁에서 밀려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과 숙박업소, 오피스텔로 가득 채워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 개발 비용, 사업 이익이라는 돈으로 환산되지 못할, 수만 겹의 세월 속에 묻어있는 가치가 바로 이곳에 살아있다.      


                



참고

KBS 시사기획 창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묻다'

세운 글로벌 포럼

다시세운프로젝트

아는 동네, 아는 을지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취재 서영 희지

집필 서영

교정교열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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