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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창고 Jul 10. 2019

샘으로 흘러온 시간들, 카페 샘 인터뷰(1)

예술이 샘솟는 공간 -2

카페 샘 인터뷰(1) : 

연희동 골목길 외딴섬, ‘카페 샘’과 이어집니다.  



“찾아오기 힘들지 않으셨어요?”    

 

카페 샘의 작은 고양이 친구들 '밤'이와 '하늘'이. 막내인 '별'이는 어디 갔는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카페 샘 유리창 안으로 꼼지락꼼지락 들어가고 있었다. 샘지기는 가게 왼편에서 고양이들을 불렀다. 다가온 ‘밤’이와 ‘하늘’이는 외부인이 빈손으로 찾아온 것을 확인하고는 간식이 아니면 관심 없다는 듯 곧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환경과 생명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마음이 담긴 카페 샘


내부는 아담했다. 눈길 닿는 곳 어디에나 푸릇 파릇한 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타피오카 빨대와 대여중인 텀블러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찾아오는 누군가라도 배려한 섬세함이 보였다. 

목요일 오후 카페 샘에는 샘지기 두 분과 사장님이 계셨다. 샘에서 평일지기로 일하며 행사가 있을 땐 매니저를 맡는 임예은 님, 토요일지기로 일하며 주로 기획과 디자인 작업을 하는 정혜진 님, 그리고 샘의 바지(?) 사장 최경민 님. 운이 좋게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Q. 샘지기 들은 재능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샘에 오게 되었나?
 

예은 원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학교에선 모범생이었고 욕심이 많아서 항상 1등을 하려고 했다. 졸업을 앞두면 졸업심사를 하는데 그게 내가 생각했던 예술이 아니었다. 심사를 마칠 때마다 과사무실 앞에 전체 학생의 심사 점수가 다 붙는데, 계속 평가받는 느낌에 엄청나게 압박을 느꼈다. 친구 사이라도 서로에게 경쟁 심리를 갖게 만들더라. 예술이라는 것마저도 ‘경쟁’밖에 되지 않으니까 답답함이 해소가 안 되어서 힘들었다. ‘예술이 이런 게 맞나?’ 싶어 고민의 시기에 들어갔다.  

   

그런 방황의 시기에 친구들과 같이 전시를 하고 싶었다. 각자 하고 싶은 그림 걸면 좋겠다 싶었다. 전시할 공간을 알아보다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을 하고 여기에 오게 됐다. 사장님이 예상외로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하시더라. 전시를 하려 해도 “돈 안 내도 된다.”라고 하셨다. 맘대로 하라는 경험이 좋았던 것 같다. 전시 끝나고 나서는 전시 기간 동안 손님들에게 받은 커피 값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려 하시고 그림도 사주셨다. 큰돈을 주고 그림을 샀다는 게 아니라(웃음)


경민 내 생각이랑 다르다(웃음) 

    

예은 어쨌든 그런 경험이 굉장히 좋았다. 2017년 2월 전시 이후에도 샘에 와서 ‘샘 프로젝트’도 몇 번 하고 개인전도 하고 그랬다. 졸업할 때쯤 사장님께서 “같이 일 하지 않겠니,”하시더라. 그리고 17년도 10월부터는 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로스팅도 하고 음료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고양이도 돌보는 만능인, 임예은 님


Q. 혜진 님은 샘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


혜진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여기저기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2018년 초에 언니(예은)에게 그림을 배우러 샘에 처음 왔었다. (사장님과는 안면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제안하더라. 같이 전시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전시를 준비할 땐 힘들었다. ‘나는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전시를 해도 되는 걸까’, ‘그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퀄리티로 괜찮은 걸까’하면서 걱정했다. 그런데 옆에서 언니가 괜찮다고, 너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줬다.

 

예은 잘하는데 본인 기준이 너무 높다. 네 기준에 맞추면 죽는 날에야 전시한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배우러 왔다고 했는데 이미 잘 그리더라. 결국 이론만 가르쳤다(웃음)     


혜진 그때 경험이 되게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구나, 그래도 괜찮구나. 이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예은 언니가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세대 사람들이 평가당한다고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평가당하고 각박하게 살다가 이 공간에 오면 "나 자체로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지점이 마음에 들었고 그때부터 발을 붙이고 야금야금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예은 반응이 재밌었다. "전시가 되네?" 하면서 놀라더라.  



Q. 사장님께서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라고 맡길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경민 사실 이 공간이 원래부터 이렇게 사용되진 않았다. 이전에 친구들과 같이 셋이서 동업을 했다. 샘, 밭 말고도 식자재 유통업까지 세 개의 사업을 같이 했었다. 여기까지(샘 간판이 있는 곳)만 카페였고, 옆에 ‘밭’ 간판이 있는 부분은 야채가게였다. 카페의 반은 식자재 창고 개념으로 썼었다. 친구들이 떠나고 사업을 혼자 하게 되면서 이걸 다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밭(야채가게)은 안 하게 됐고 이 공간(샘)만 남겼다. 여기를 의미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논의하던 다른 친구가 예은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더라. 

    

보통 미대에서 졸업전시를 하면 대부분 좋은 곳에서 돈을 많이 들여서 전시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여기는 돈 받고 전시를 할 위치는 아니니까, 여기 와서 뭔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예은이와 친구들이 와서 단체전을 했을 때 나도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내가 볼 땐 ‘이곳이 너무 누추한데…’, ‘전시를 한 사람의 식구들이 와서 볼 텐데…’. 그런데 찾아온 많은 분들이 전시를 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전시를 감상하며 기뻐했다. 전시한 사람들도 스스로 자신감을 얻더라. 그걸 보고 감동을 받았다. 그 경험이 나에겐 너무 좋았고 크게 임팩트가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조금씩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카페 샘의 바지(?) 사장, 최경민 님


Q. 그 전에는 일반 카페로 운영을 했나?


경민 카페이긴 했는데, 사실 여기 주위에 커피를 마시는 분은 잘 안 계신다. 거의 어르신들이 살고 계시고…. 


예은 이곳은 10년 전에 이미 재개발 지구로 지정이 된 상태였다. 시간이 멈춘 동네였다. 하루에 손님이 한 명 올까 말까 했다. 이곳에서 처음부터 “카페를 해야겠다.”는 아니었고 “채소가게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공간이 남네? 커피도 팔아볼까?”해서 카페 샘을 시작한 거였다. 남자 셋이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차리는 게 열풍이었을 때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다들 나가고….(웃음) 


 Q. 전시 이외에도 ‘샘 프로젝트’, ‘샘 클래스’라는 것을 진행했다. 무엇인가?


예은 '샘 프로젝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걸고 설명하면 음악 하시는 분들이 그림에 어울리는 곡을 연주해주시는 거였다. ‘샘 클래스’는 여기서 페이도 안 받고 연주해주시는 분들, 그림 그려서 전시를 하시는 분들께 고마움을 느껴서 사장님께서 "예술가 분들이 이곳에서 클래스를 해서 돈을 벌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하셔서 시작하게 됐다.

   

(왼) 작가가 그림을 설명하면 어울리는 곡을 연주하는 샘프로젝트. (오) 샘클래스로 진행했던 수채화 드로잉 클래스 (출처 : 카페 샘 인스타그램  @cafe_saem)
Q.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 카페는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만 운영하는 건가?  


경민 그건 인건비 때문에.(일동 웃음) 

예전에는 샘에서 파트타임으로 알바를 하던 친구들이 있었다. 손님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자리를 지킨다는 느낌으로. 그런데 예은이에게는 평일 12시부터 5시까지 일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여기가 주택가다 보니 어두워지면 사람이 안 다녀서 굳이 그 이후까지는 열어둘 필요가 없겠더라.


예은 처음에는 다섯 시 이후의 시간은 네 작업실처럼 써도 된다고 얘길 해주셨다. 대학 졸업 후에 뭘 할지도 막막하고 짐 싸서 작업실 삼을 카페를 찾아다니느라 지쳤었다. 여기에서는 일 하면서 돈도 벌고 저녁에는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수업도 준비해볼 수 있었다. 사장님은 저한테 “네가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이곳을 써봐라!” 해주시니까 ‘나쁘지 않네?’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Q. 그게 벌써 1년 반이 넘었다.


예은 처음에는 여기서 일 좀 해보다가 대학원 가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깊게 관여하게 될 줄이야.(웃음)    


피아노와 이젤, 스크린이 있는 카페 샘의 특별한 공간


Q.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기획을 했다.


예은 혜진이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모임을 해보고 싶어 했다. 해 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기획을 해 왔다. 2018년 4월 봄에 같이 전시하고 탄력 받아서 다음 달에 첫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영화제를 열었다.  '남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세 편을 엮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상영을 하니까 다르더라.


Q. 두 번째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기획'은 샘의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 같다.


혜진 어떤 영화를 틀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기보다는 ‘이맘때쯤 <프란시스 하>를 보고 싶다,’ 싶으면 예은 언니한테 얘기한다. “<프란시스 하> 보고 싶은데 같이 볼래?”, “그럼 영화제 하자” 하게 되는 거다. 그럼 프란시스 하 하나만 덩그러니 보긴 좀 그러니까 다른 영화도 주제로 묶어서 그럴듯하게 해 보자. 그러다 보니 지금 샘의 상황과 연결된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약간 이런 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서부터 진행이 된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는 샘의 디자이너, 정혜진님이 기획한 '우리 동네 작은 영화관' (왼)<남겨진 사람들> (오)<꿈과 삶 사이에서>(출처 : 카페 샘 인스타그램  @cafe_saem)


예은 사장님과 둘이 할 때는 버티면서 하나하나 했는데 아무래도 혜진이와는 연령대도 비슷하고 고민도 처지도 관심사도 비슷하다 보니까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혜진 의견이 하나씩 툭, 툭.     

예은 “어디 가보자”, “저건 어때”, “들어가 보자”, “응!” 하게 된다. 친구 같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혜진 둘 다 즉흥적이다.     

예은 맞다. 둘 다 즉흥적인 걸 즐긴다. “언니 이거 어때” 하면 “오 대박” 하고.   


Q. 툭툭 던져도 받아줄 거라는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겠다.  


혜진 : 사장님이 재정적으로 서포트해주시고(웃음)



다음 편에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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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희동 골목길 외딴섬, '카페 샘'


집필 희지

인터뷰 희지, 서영, 현정

사진 희지, 서영

교정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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