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렸어, 고생 많았지?
1. 많은 것을 알아보고 많은 준비를 해 갔다. 무통 주사는 맞을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지, 언제 맞을 수 있는지, 가족 분만은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탯줄은 내가 자르는 건지.. 수능 하루 전 최종 점검을 하는 수험생의 마음으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빠진 건 없는지 꼼꼼하고 치밀하게 조사했다. 분만실에서 진통을 위해 촉진제를 맞고 누워있는 아내 옆에서 남편이 함께 출산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분만'을 신청하고 기타 필요한 서류에 서명을 하며 도담이를 만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던 아내는 점점 많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침대 양쪽의 손잡이를 잡고 신음했다. 빨래를 짜면 물이 떨어지듯 쇠로 된 저 손잡이에서도 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아내는 고통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가 더 내려와야 하고, 자궁문도 더 열려야 무통 주사도 맞을 수 있어요."
간호사 선생님은 힘들어 하는 아내가 안쓰러운 듯 연신 찾아와 상태를 확인했다. 중간중간 직접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내진은 아내를 더욱 힘들게 했다. 5시간 여 진통은 계속됐지만 도담이는 조금도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일찍 나오고 싶어서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가는 이제 나올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기도하듯 아내와 손을 맞잡고 있는데 담당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진행이 너무 더뎌. 더 버텨보는 건 상관없는데 아이가 너무 커서 위험부담이 좀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 위험부담? 어떤 위험부담을 말하는건지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술을 하는게 낫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자연 분만에 대한 의지를 보이던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돌아가 이야기를 꺼냈다. 힘들어서 내가 하는 어떤 말도 안 들리더라도 아내에게 전해야 했다. 선생님께서 수술을 권하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내 말을 못 들은건지, 결정을 내릴 수 없는건지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 모시고 올게. 그 길로 나는 선생님을 만나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아내는 휠체어에 타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후의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몇 분 되지 않아 간호사는 다시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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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는 건강하다고, 산모는 아직 수술 중이고 마취가 풀리면 나올 거라고. 그 짧은 한 마디가 굉장히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저게 무슨 말이지, 태어났다고? 정말?
"아이 확인하러 가실거예요. 따라 오세요."
어버버하는 나를 이끌고 간호사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사고 회로가 정지된 듯 나는 간호사가 시키는대로만 움직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초록색 수술 가운을 입고 신생아실 안에서 도담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도담이는 작은 카트 위에서 힘차게 울고 있었다. 이 때가 조리원 퇴소 전까지 내가 도담이를 가까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멍충이처럼 어리버리하게 굴지 않았을텐데, 손이라도 한 번 잡아봤을텐데.
아이가 추워하니까 빠르게 설명 드릴게요, 라는 말을 시작으로 간호사는 '도담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줬다. 능숙한 손을 따라 움직이는 눈으로 본 도담이는... 작았다. 분명 4.2kg이 넘었는데 실제로 태어난 몸무게는 3.9kg이었고 태어나며 머리에 조금 압박을 받아 두혈종이 있을 거라고 했다. 작은 이상에도 가슴 철렁여 하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간호사는 '많이들 있는 증상이며 시간이 지나면 흡수돼 사라질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추운지 연신 몸을 떨며 울고 있는 도담이를 바라보는 내게 간호사가 사진 찍으라며 일러줬다. 아 맞아, 사진 찍어 오랬지 아내가. 부랴부랴 휴대폰을 꺼내 간신히 두어장을 찍고 간호사를 등떠밀어 들여 보냈다. 도담이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자연 분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 도담이가 함께 만나는 순간은 없었지만 신생아실을 빠져나오며 나는 조금씩 감동에 젖고 있었다. 내가 먼저 본 걸 알면 툴툴거리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은 아내를 기다리기 위해 대기실로 돌아갔다. '끝날 때가 된 것 같은데, 나왔냐고 가서 물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리기를 세 차례정도 했을 때 나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실 앞으로 달려가자 담당 의사, 간호사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잘 나왔어. 커서 힘들었을 것 같아, 수술하길 잘 했어. 몸무게는 한 3.9 나오는 것 같던데..."
"와이프는요?"
"아이만 잘 나오면 산모는 괜찮아. 힘들 것도 없었고 수술도 잘 됐어. 마취 깨면 나올거야."
내 어깨를 툭, 두드려주고 선생님은 자리를 떴다. 그제서야 대기실에 보호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TV 소리, 간호사들의 분주한 발걸음 소리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술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가 나왔다. 안심했다. 고생 많았어, 고생했어.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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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술의 후유증이 시작됐다. 아내는 배가 아파 계속 신음했다. 마취가 풀릴 수 있도록 계속 말을 걸어주라기에 도담이 보고 온 이야기를 해 줬다.
"눈도 코도 입도 다 멀쩡해. 피부가 울긋불긋한데 갓 태어나서 그렇대. 머리 한 쪽이 살짝 볼록한데 두혈종이라고 부른대. 한두달이면 다 없어진다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라."
"울음소리가 얼마나 우렁찬 지 몰라. 이따 마취 깨고 눈 뜨면 사진 보여줄게. 손가락, 발가락도 되게 길어. 생각보다 되게 작아서 놀랐어."
"너무 예쁘더라. 아직 누굴 닮았는지는 모르겠어. 감이 잘 안와! 좀 더 커야 알 것 같아."
끊임없이 주절대는 나를 옆에 두고 아내는 마취로 인해 몽롱한 정신과 극심한 복통으로 힘들어 했다. 복통은 며칠 갈 거라고 했지만 점차 정신은 또렷해졌고, 도담이 얘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진 보고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열어 아내에게 보여줬다. 처음엔 실감이 안 나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그 다음에는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마지막으로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내를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10개월 동안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 많았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저녁 7시에 신생아실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와이프는 걷지 못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사진 좀 많이 찍어와. 겨우 두 장이 뭐야."
"나도 정신이 없었어. 선생님이 찍으라고 말해줘서 그때서야 겨우 찍었어."
이번에는 잔뜩 담아오리라 다짐하고 7시 면회시간에 신생아실을 홀로 방문했다. 산모 이름을 대고 기다리자 유리창 너머로 간호사가 한 아기 침대가 올려진 카트를 끌고 다가왔다. 처음 만남처럼 가깝진 않았지만, 직접 손을 맞대고 온기를 느낄 수도 없었지만 새롭게 반가웠다. 그런데 유리창 너머로 실눈을 뜨고 샐록거리고 있는 아기는 아까의 도담이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붉은 반점도 조금 빠지고 피부도 약간 팽팽해진.. 굉장히 통통한 모습이었다. 붓기가 빠져서 엄마를 닮았니, 아빠를 닮았니 하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고 이때는 볼살이 터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도담이가 마냥 귀여워 부지런히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아내에게 보여주니 너무 귀엽다고, 빨리 안아주고 싶다고 해 훈훈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도담이의 실물을 본 아내는 내게 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