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을 퇴소한 날, 본격적인 육아의 시작.
1. 아침 일찍 일어나 퇴소 준비를 마쳤다. 차에 모든 짐을 싣고 하진이를 데리러 신생아실로 올라갔다. 유리벽 너머 하진이는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리원 선생님은 아기가 혹시라도 추울까 이불로 꽁꽁 싸매고 마지막으로 한 번 꼭 안았다. 그 모습을 보며 아내와 나는 괜히 뭉클했다. 매일, 매주 수많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갈 텐데 저렇게 매번 정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마웠다.
선생님은 하진이를 데리고 유리벽 왼쪽에 있는, 평생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문을 열고 나왔다. 아내에게 하진이에 대해 여러 가지 당부를 하며 주차장까지 함께 내려갔다. 마침내 아내는 하진이를 받아 품에 안고 차 문을 닫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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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를 몰아 집에 들러서 필요한 짐과 옷가지를 챙긴 후 일산의 부모님 댁으로 다시 출발했다. 당분간은 일산에서 다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일산까지 약 30분 정도가 걸렸지만 하진이는 자는 듯 조용했다. 아기들이 차를 좋아한다더니 정말이군!
일산에 도착하자마자 하진이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아버지는 누워있는 하진이 주변을 맴돌며 신기한 듯 바라봤다.
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하진이를 안고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 동생도 하진이를 안아보고, 사진 찍고, 손도 발도 만져보며 조카가 생겼음을 실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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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산에 도착한 게 오전 11시 30분. 그때부터 밤 12시까지의 반나절은 정말이지 길었다. 먹고, 자고, 놀거나 운다. 그 놀랍도록 단순한 일과에서 남편의 역할은 많지 않았다.
여기서 '역할이 많지 않다'라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는 아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겠다. 아직 아빠라는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하진이는 밥을 줄 수 있는 엄마와 능숙하게 안아줄 수 있는 할머니와 고모의 품에서 편하게 지냈다. 아버지와 나는 끊임없이 세 여자를 돕는 역할을 할 뿐 하진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다.
안아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의 역할 역시 아내의 보조일 뿐이다. 이런 행동들은 순간적인 도움은 될지 모르지만 아내의 결정적인 피로를 덜어주지 못했다. 아이의 성장에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지만 우리에겐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였다.
밤 12시, 아내는 또 한 번의 수유를 마쳤다. 지칠 대로 지친 아내는 하진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잠꼬대하듯 아기에게 부탁하는 아내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누웠지만 끊임없이 내가 더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느라 잠이 오질 않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하진이와 우리의 첫날밤은 이렇게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