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머넌트바이올렛 Oct 18. 2023

커서 뭐가 될까 했던 나의 학창 시절

우리 어머니는 내가 뭐가 될까 정말 많이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꽤나 공부를 잘했으나,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연필대신 고무줄을 잡고 해가 지도록 넘어 다녔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체육 수행평가인 뜀틀을 넘겠다고 학교에서 연습을 했는데 허벅지에 멍이 들도록 열심히 해서 체대에 보내야 하나 하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렇게 간판을 그려댔다고 한다. 그걸 본 이모가 미술을 시켜보라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냈는데, 매일 사각형과 원기둥을 그리는 게 너무 지겨워서 때려치웠다.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순간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고 고등학교를 가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실업고등학교는 넣어도 떨어질 것 같다던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후 얼마 안 되어 내가 있는 지역이 급 고교평준화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인문계 미달, 뺑뺑이의 은혜로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꽤 넓은 지역을 두고 평준화가 진행되어서 진학한 고등학교 반에는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각지에서 모여서 그런지 우리는 정말이지 몇십 명이 다 같이 친해졌다. 몇십 명이 같이 노래방을 가고 계곡도 놀러 갔다. 그 안에서 커플도 참 많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이들과 한 학기의 시간만 보내고 미국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교환학생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너무 스펙터클 하고 재밌어서 이후에 따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여하튼 심플하게 결론을 짓자면 질풍노도의 시기 때 부모님이 정신 차리라고 신청한 교환학생. 친구들이 너무 좋았던 나는 가기 싫어서 영어시험을 보러 가서 일렬로 찍고 잠을 잤음에도 가게 된 그런 상황이었다. 출국장 안에 들어간 나는 밖을 백번은 쳐다봤다는 부모님의 증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그곳에서 얼떨결에 나의 적성과 진로와 미래를 찾았다는 해피엔딩 비슷한 이야기.


학창 시절에도 그렇게 뭐가 될지 궁금했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뭐가 될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러고 있다니 인생이란 참으로 ‘아이러니, 말도 안 돼’가 확실하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다 자신의 길을 찾은 것처럼 보였는데, 사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방황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 어른들은 등에서 땀 한 줄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을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팜므파탈이 될 줄 알았던 나의 소녀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