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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머넌트바이올렛 Jun 07. 2022

큰 칼을 들기보다 작은 칼 여러 개를 쓰기로 했다

배운것은 꼭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100번째 이력서 전송.


호기롭게 대기업 퇴사를 한 후 일 년이 넘어가던 날이었다. 소개팅도 100번 하면 한 명은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서로가 같이 마음에 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취업시장은 이보다 더한 것이었다. 일방적인 거절과 실패가 반복되면서 자신감이라는 단어는 이미 가출한 지 오래. 이름 모를 어쩌고 회사라도 붙여만 준다면 열정 페이도 환영한다는 마음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합격, 불합격 통보조차 없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삶이었다.


이쯤 되면 엄청 그 회사에 가고 싶었다거나 그 일이 천직인데 못 간 건 아니지 않냐며, 어딘가에 숨어있을 긍정이에게 말을 건다. 너는 할 수 있다는 둥, 그 회사가 인재를 못 알아본 거라는 둥, 숨어있던 긍정이가 나름 활약한다. 그러나 가벼운 펀치도 같은 자리에 계속 맞으면 멍들기 마련이다.


‘한 놈만 패서 그런가?’


4년이라는 시간과 엄청난 등록금을 쏟으며 배운 디자인. 이것 말고 다른 길로 취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배웠으면 써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 분야에서 계속 실패하다 보면 이 길이 아닌가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순간 나는 내 취업 영역의 바다가 망망대해로 넓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4년을 디자인을 배웠다. 그렇다고 디자인만 배우지는 않았다. 종합대학교에서 정말 종합적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이것 말고도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많았다. 세상에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디자인도 잘하는 사람은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이제 아이템을 바꿀 시간이었다. 큰 칼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칼들을 다 모아 보는 시간.


마침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백수 기간 동안 부모님의 잔소리를 피해 떠나고 싶었던 나는 코이카 해외 봉사활동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남들이 잘 안 가는 지역을 지원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라오스에 지원했는데 덜컥 붙어버렸다. 무야호. 집에서 해방될 생각에 신이 나서, 부모님께 이러이러 저러저러해서 2년간 라오스에 가는 것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가면 호적에서 파 버린다고 하셨다. 못 가게 하니 더 가고 싶었던 나의 꿈이여.


NGO 경력이라고는 전무한 나는 묻어 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봉사활동 팩트 한 줄에 미사여구 세 줄을 붙여가며 자기소개서를 썼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쳤던 경력들을 끌어모아 태산으로 만들어 이력서에 적었다. 그리고 그 이력서의 마지막에 한 줄을 덧붙였다.


디자인도 할 줄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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