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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머넌트바이올렛 Jun 16. 2022

진짜 발을 담가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관심 있는 일은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후원자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아마 내일도 가장 많이 한 말일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한 달 뒤에도, 앗.. 아차 하면 평생일지도.


NGO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보통 누가 봐도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 더하기 돈도 벌 수 있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TV 광고를 보면서 소중한 씨앗을 심고 싹 틔우는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열정을 거름으로 주며 일하더라도 이렇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니! 세상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 행사가…”

“이번에 증액을…”


국내 사무실 사원의 현실은 베스트 업무 파트너 전화기를 통해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을 한다. 후원자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건 기본이요, 랜선으로 쌓아나가는 관계의 선두주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의 직장 라이프 전화예절을 장착하는데 한몫했다.


“아프리카 비자요?”


가보지도 않았고 가지도 못하는 국내 사업부 사원은 방구석에서 아프리카 정보를 캔다. 케냐에서 오지로 들어가는 차편 정보도 캐고, 환율 정보도 캐고, 현장에서 도와줄 아프리카 사람들도 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아 힘들다는 국내 직원들에게 책상에서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해외 직원의 CS까지 맡기는 판타스틱 아일랜드가 따로 없다. 적어도 아프리카 사람을 캐는 것은 아프리카가 더 쉽지 않을까 싶지만 어쩌겠는가?


하지만 모든 일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업무의 꽃은 바로 ‘모금’이었다. 이것이 없이는 NGO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행사는 모금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인맥도 모금을 위해 존재하며 모든 업무도 사실 모금을 위해서다. 후원 없이는 굴러가지 않다 보니 어떻게 하면 모금을 잘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기관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금을 가르쳐주는 기관도 NGO다. 우리가 모금 강의를 듣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으로 그 기관이 먹고산다.


이 생태계, 의미심장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내면의 카오스로 인해 다칠 수 있으니 조심.


저 멀리 아프리카 사람들이 행복하기는 한지 직접 만나서 대화할 수 없으니 사실상 알 수 없다. 물론 열심히 후원받은 것들이 그들의 세상을 더 이롭게 하긴 한다. 다만 바다를 건너오며 걸러진 정보를 또 그럴싸하게 가공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모금을 위해 사는 것, 모금이 없이는 내 월급도 없는 것, 이게 바로 업계의 현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떻게 살지 걱정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 발을 담근 나를 걱정했다.

무턱대고 업계를 바꾼 나에게 모니터 속 아프리카 아이들이 말한다.


“웰컴 투 NGO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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