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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지은 Jul 08. 2019

고레에다 히로카즈 <걸어도 걸어도>

'아, 그때 이랬더라면' 후회하는 당신에게

영화 <걸어도 걸어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가족 영화의 장인이라 불리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영화를 보기 전 책부터 읽었는데 일본 소설 특유의 큰 굴곡 없이 잔잔한 여운을 주는, 읽은 중간중간 잠시 멈춰 서 지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책 끝을 접은 구절


"나는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있던 날로부터 28일까지 매일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는 늘 그러듯이 충치와 건강을 걱정하는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걸로 완전히 안심하게 된 나는, 어머니를 살펴보러 본가에 가보지 않았다. 모처럼 만에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건 만, 뭐, 어차피 사흘만 지나면 갈 테니까. 지금 내려가게 되면 그대로 설날까지 지내게 되는 수가 있다.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어머니를 위해 시간을 쪼갤 여유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회랄까 죄책감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쓰러질 때 곁에 있어 봐야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 후로 나는 몇 번이나 어머니를 끌어안고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이 일로부터 배운 것은, 인생에는 어떻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실패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를 깨닫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124p)"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집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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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늘 예기치 못할 때 찾아온다. '뭐, 어차피 사흘만 지나면 갈 테니까. 명절이면 다 모일 테니까.'하고 내가 안심하는 참이면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던 불행이 단숨에 찾아온다. 다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을 몇 번 겪고 나서 내가 배운 점은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이다.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자꾸만, 자꾸만 줄어든다는 것.

 

할머니 집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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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대화하며 할아버지 몰래 그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웃음소리도 성내는 소리도, 우리의 시답잖은 수다도 모두 녹음했다. 그와 이별하고 나서 마음 아파 이 음성을 다시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리미리, 그리고 차근차근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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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주말에 정말 쉬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아침부터 서울대공원을 가자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다녀왔다고 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아직도 본인을 아이로 보신다며 토요일 아침부터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십년만에 동물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실은 나중에 그날 동물원 안 간 거 후회할까봐 다녀왔어.'



"구로히에야마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결국 아버지와 축구를 보러 가지 못했고, 어머니를 한 번도 차에 태워 드리지 못했다. '아, 그때 이랬더라면...' 이라고 깨닫는 것은 언제나 그 기회를 완전히 놓치고 나서, 다시 되돌릴 수 없을 때였다.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그것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를 읽고 난 뒤에 얻은 솔직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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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딩나잇 때 이 책을 선물로 가져갔다. 우리가 공유하는 이 시간, 현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신발, 함께 나눠 먹는 수박 한조각. 이 모든 게 유한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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