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7번 도로 #1 20210326-20210327
강원도로 가는 길은 가끔은, 한 번에 가기에 조금 길다. 가는 중에 쉬어갈 겸, 가고 싶은 곳을 모아놓은 즐겨찾기 보따리 중에서 한 곳을 골라, 춘천의 한증막에 가보기로 한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은 고전미가 물씬 풍긴다. 한옥에 흔치 않은 중정의 긴 연못과 그 끝에 있는 정자가 인상적이다.
들어가 보니, 나는 어차피 있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마스크 착용을 의무로 하고 찻집과 식당 운영도 쉬는 등 방역에 유의하는 모습이어서 좀 더 안심이 된다.
운영 중인 시설은 탈의실 겸 샤워실, 그리고 한증막, 소금방이 하나씩 있고, 그 앞으로 나오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연못과 정자가 있던 밖에도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 있다.
먼저 한증막부터 들어가 본다. 코로나19로 실내 시설을 피하느라 찜질을 한 것도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나무를 태워 뜨겁게 달구는 돔 형식의 한증막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러한 한증막에는, 나무 향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기운과 운치가 있다. 이 안에서 땀을 흘리다가 바깥으로 나와 평상에 가만히 누워있으니, 가끔 잠이 안 올 때 불러보는 '알렉사'와 '헤이 구글'이 들려주는 소리가 아닌 진짜 자연의 새소리가 들린다. 맑은 하늘과 구름과 공기와 나무와 새와 연못과 물고기, 그리고 그 곁에 나, 스트레스와 피로가 은근하게 풀리는 느낌이다. 한 나무는 집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지 지붕에 구멍을 내어 나무가 자라도록 해둔 모습이 멋지다.
이왕 온 김에, 2층으로 올라가 본다. 안마 의자를 발견해서 이것도 이용해 본다. 금액은 10분에 천 원으로 다른 곳과 같은데, 비교적 좋은 편의 제품인지 손바닥과 발바닥까지 살펴주는 세심한 안마를 해준다. 복도 끝으로 문을 열고 나와보니 테라스 같은 곳이 나왔다. 정말 좋아, 다음에는 좀 더 길게 와있어야겠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밖을 보니 예고대로 하늘이 흐렸다. 바다 구경은 맑을 때 하고 싶어서, 대신 무엇을 할까 검색을 해보다 근처에 한옥 마을이 있어 가보기로 한다. 한옥 마을이라는 것은 서울 북촌, 전주, 낙안 정도만 알았고, 고성에 몇 번 와봤으면서도 이곳에도 한옥 마을이 있다는 것은 조금 전 처음 알았다. 한옥 몇 채가 지어진 한적하고 약간은 인위적인 작은 마을을 상상하면서 갔는데, 고즈넉하기는 했지만 아직 거주하고 있는 집도 꽤 되는 본격적인 마을이었다.
영화 '동주'의 촬영지인 곳도 있었다. 이곳이 북방식 한옥이어서 '윤동주' 시인의 생가인 북간도 용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송몽규' 열사를 연기했던 '박정민' 님도 처음 알게 된 것이 생각난다. 영화에서 윤동주 님의 고뇌가 느껴지는 '쉽게 쓰여진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라질 뻔했던 이 아름다운 작품들이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알려지고, 나도 덕분에 이렇게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얼마 전에 서울에서 '인왕산 숲길'을 걸으며 윤동주 문학관도 다녀왔는데 또 이렇게 이어지니 조금 신기하다. 그곳의 벽에는 '새로운 길' 전문이 쓰여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는, 늘 옳고 새로운 길을 찾는 나에게 와닿아 남아 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동해로 이동하여, 이곳에 북평민속시장이라 하는 큰 전통 시장이 있는데 마침 오늘이 장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들러보았다. 조선 시대에 생긴 시장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오래되었고, 규모도 상당히 크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길가에 노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길 따라 구경하며 다니다 보니 정말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느낌이 드는데, 특히 생선이 많고 묘목이나 씨앗을 파는 곳도 크게 있다.
먹거리를 파는 곳 중 한 가게에서, 메밀묵을 포장 주문하고 메밀전은 시켜서 옆에 마련된 자리에서 먹었다. 4천 원이라 생각을 못했는데 메밀전이 2장이나 돼서 양이 꽤 많다. 메밀의 슴슴한 첫맛과 고소한 뒷맛은 언제나, 어느 음식이든 맛있다.
강원도에 왔으니까 찐 옥수수도 좀 사고, 구운 돼지감자는 처음 보는 거니까 한 묶음을 샀다. 시장 입구에서 작게 감자전만 만들어서 파는 분이 있어서 또 지나치지 못하고 포장을 했다. 이미 많이 사서 살까 말까 고민했었던 감자전은 정말 맛있었다. 역시 한 가지 음식만 파는 곳은 맛이 있고, 여행지에서만큼은 살까 말까 하는 건 사는 게 맞다. 이거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