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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ame Oct 10. 2022

김애란 『바깥은 여름』, 당신에게 여름이란?

현대소설

김애란 - 바깥은 여름



책을 읽은 건 여름, 글을 쓰는 건 가을이다. 추분이 지났을 때만 해도 언제 가을이 오나 싶었는데, 한주 새 완연한 가을이다. 사실 계절의 변화에 큰 감흥을 느끼진 않는다. 하지만 올해는 사뭇 다르다. 한여름 초록빛 거리와 파란 하늘의 편안함과 나무 그늘에 앉았을 때 부는 바람의 시원함을 당분간 느끼지 못한다니... 잘 찍지 않는 사진도 올해 들어 많이 찍고 있는데... 이제 가을 사진이나 또 열심히 찍어야지 ㅎ


아무튼 여름과 겨울은 호불호가 확실한 계절이다. 너무 덥고 너무 추워서겠지만. 비도 많이 오는 여름이 불호라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 푹푹 찌고, 습함에서 오는 처짐과 눅눅함이 싫어서. 우린 날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땀이 많이 나긴 하지만. 빗소리와 비 냄새를 좋아하는 내가 잘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기도 하다. 여름의 찐득함과 습함을 7개의 단편으로 보여주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처음 읽었을 땐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p. 18



『바깥은 여름』 속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로 습하고 눅눅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의 부모(입동), 길에서 주워 키우던 노견을 잃는 소년(노찬성과 에반), 8년의 연애 끝에 이별한 커플(건너편), 정교사가 되기 위해 학과장의 음주 운전을 뒤집어쓴 가장(풍경의 쓸모), 피부색이 다르단 이유로 차별받는 다문화 아이(가리는 손), 학생을 구하다 사망한 남편을 둔 아내(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등.


작가는 인물들의 삶을 애써 위로하지도, 희망을 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삶의 눅눅함으로 예민해지고 무너지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저 담담하게 그린다. 삶은 원래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부조리하니까. 게다가 기쁨과 달리 슬픔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런 슬픔을 예상하고, 슬픔에 익숙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그 말은 그만큼 수많은 슬픔을 겪었다는 말일 테니까.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p. 190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슬픔과 기쁨을 마주한다. 그리고 우리 감정은 조금씩 '기쁨'에 무뎌진다. 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던 중 외로움에 개를 주워와 행복해하는 노찬성과 달리 돈 걱정을 하는 할머니처럼 말이다.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사소한 것에 기쁨은 느끼지 못하지만 슬픔은 느껴지니까.


다르게 생각하면 우린 기쁨엔 관대하고, 슬픔엔 엄격하다. '나'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 무너져내린 아내를 제대로 위로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만 한다.(입동) 사람들은 재이가 다문화 아이란 이유로 범죄 사건의 주동자라 단정한다.(가리는 손) 슬픔을 감내하고, 편견에 맞서는 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일로 치부된다.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걸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 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p. 214



이 책의 제목이 『바깥은 여름』인 이유는 뭘까. 지나고 나면 여름의 기억은 찬란하고 아름답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이야기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햇빛을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모두 행복해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아는 것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작가 역시 인물들이 삶의 눅눅함에서 벗어나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책의 제목이 '여름'이 아닌 '바깥은 여름'인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여름의 햇빛은 뜨겁지만 해는 가장 길다. 무덥고 습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바람은 더 시원하다. 곳곳에선 수많은 페스티벌이 열린다. 다른 계절의 바다는 쓸쓸하다면 여름의 바다는 에너지가 넘친다. 봄에 싹을 틔운 나무들은 초록빛이 무성해져 사람들을 맞이한다.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할 때 우린 말한다. 여름이었다.



제가 이해하는 삶이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랍니다.

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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