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 숨 Feb 22. 2024

오일장

2024.2.21


며칠 전 다녀온 가족 여행지는 또 양양이었다. 2021년에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간 이후, 바다도 산도 모두 곁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그 작은 도시는 우리 가족의 최애 여행지가 되었다. 양양에서 남들에게 핫하다는 장소는 사실 가보지도 구경해보지도 못했지만—도대체 뉴스에 나오는 그런 한국의 이비자라느니 하는 곳은 어디에 붙어 있는 건지—우리 가족은 양양에 대한 나름의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어디가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파는지, 어디에 가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비가 오면 어디를 갈지, 어떤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지 등등.


가장 최근에는 오일장에 다녀왔다. 그간 다른 여행지의 시장을 가보긴 했지만 오일장은 처음이었다. 마침 날짜가 맞기도 해서 가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로서는 그런 전통시장 구경이 처음이었다.


우리가 사는 서판교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 전통적인 의미의 “시장”이라는 게 없다. 일주일에 한 번 큰 아파트 단지에 작은 장이 서기도 하지만 가게와 노포로 가득 찬 골목의 시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유명 관광지의 큰 상설시장은 가봤어도 오일장은 처음인 아이들은 북적이는 골목 구경을 흥미로워했다. 아주 큰 규모도 아니고, ‘너무 똑같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들만큼 비슷한 구성의 나물류를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이 대다수였지만 말이다.


시장 구경을 하니 먹거리를 안 살 수가 있나. 사람들이 줄 서서 사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거라며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가 사온 따끈한 두부 한 모는 집에 돌아와 그 커다란 걸 그날 저녁상에서 모두 해치워버릴만큼 맛있었고, 커다란 가마솥에 조청인지 엿인지를 부르르 끓여 만든 쫄깃하고 부드러운 오란다도 한 봉지 데려와 아직 주섬주섬 먹고 있다. “국내산”이라고 커다랗게 써붙여 팔던 볶은 땅콩은 “근데 사실 국내산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라며 남편과 낄낄대며 사와 매일 한주먹씩 먹는 중이고.


그리고 딸기 한 바구니. 동네 마트에서 파는 것과 비교하면 모양과 크기도 들쭉날쭉에 대충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부어놓고 파는 모양새였지만 저렴한 가격과 요즘 잘 못보던 작은 알맹이 크기가 좋아보여 사왔는데, 와 맛있다. 가끔 어른들이 요즘 딸기는 “딸기맛 과일”이라며 달기는 단데 별 특색없어 맛없다 하시는 것과 달리 진짜 딸기 맛이 난다. 시골장에서 사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 지금이 딱 딸기철이라 그런 걸까. 모르긴 몰라도 둘 다 한 몫 하는 것 같은데 오랜만에 다녀온 시골 장에서의 먹거리가 며칠 동안 내 배와 기분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책이 아쉬운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