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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Aug 22. 2020

안녕, 나의 제주

내가 나를 조금씩 더 사랑했으면





  제주에 살 날이 그러니까 딱 일주일 남았다. 연이가 9월부터 서울 본사로 출근하라는 갑작스러운 발령 통지를 받은 지 약 삼 주가 지났고 제주에서 하던 일을 때려치운 지 사 개월쯤 된 나는 망설임 없이 그와 함께 대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 이것저것 귀찮게 설명하고 서울로 보내 달라고 생떼를 부릴 필요도 없었고 휴직을 할지 퇴직을 할지 머리 아프게 고민할 일도 없었다. 진작에 그만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서로의 일 때문에 연이와 떨어지기는 죽어도 싫었다.


  서울로 가게 된 것은 어쩌면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더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서울은 앞으로 회사 없는 삶을 살기로 작정한 나에게 더 많은 배움의 기회와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었다. 좋아하는 와인을 몇 배는 더 자주 홀짝거릴 수 있을 것이고, 퇴사 후 번역과 불어를 꼭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던 나의 소망이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부라타 치즈와 딜을 샛별배송으로 받아볼 수도, 무료배송 딱지가 붙은 여러 생필품들을 진짜 무료배송으로 편하게 쇼핑할 수도 있을 것이다(제주에서는 무료배송인 줄 알고 주문한 물건들에도 꼭 몇 천 원의 도선료가 추가되곤 했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이 아름다워 좋아했던 다랑쉬 오름








  요즘 제주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식당들을 동서남북으로 하나씩 찾아다니며 우리만의 이별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슬펐다. 밥을 먹으면서 슬펐던 건 절대 아니고 동쪽 끝 성산으로, 남쪽 끝 서귀포로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필름처럼 지나가는 풍경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여름의 절정에서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그 푸르름들을, 어떤 것의 방해도 없이 작살처럼 내리 꽂히는 순도 높은 햇살을, 구름과 땅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섬에 봉긋봉긋 솟아있는 오름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내 눈 앞에 있는 풍경인데도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달려가 짭쪼름한 바다 내음을 있는 힘껏 들이마신 후 파도 옆에 앉아 끝이 어딘지도 모를 푸른 물결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일상에도 안녕을 고해야 했다. 나는 한 2년 정도 꿈 속에서 살았구나. 언제까지고 제주에 살 줄 알고 미루어 둔 채 미처 가보지 못한 해변과 숲이 이내 아쉬워졌다.

 





해질녘 동쪽에서 서쪽으로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다가





  나는 제주 속의 내가 다른 곳의 나보다 조금 더 좋았다. 제주는 그런 곳이다. 숨기고 싶은 나의 결점을 조금씩 인정하고 기어이 사랑하게 되는 곳. 도시에서 멀어져서일까.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특성상 외부 자극이 훨씬 덜해서일까. 제주와 서울은 하루를 지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숫자가 몇십 배쯤은 차이 나는 곳들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을 수도 있는데 느슨한 인구 밀도는 삶의 질과 사고방식에 생각보다 지대한 영향을 준다. 비교 대상이 현저하게 줄어들면 누군지도 모르는 주변인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기를 멈추게 된다. 나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나밖에 남지 않으면 그냥 내가 나인걸로 만족하기에 이른다.


  제주에 살며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어두운 톤의 내 피부를 예전보다 조금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매년 5월 즈음 햇살의 밀도가 높아지는 계절이 오면 나에게 어디 좋은 곳 놀러 갔다 왔냐고 묻는 사람들이 예외 없이 한둘은 있었다. 그맘때면 태닝하고 온 것처럼 까무잡잡하게 그을리기 시작하는 피부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볕 좋은 거리를 평소와 다름없이 걸어 다닌 것뿐이었는데 누군가는 꼭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어릴 때는 피부가 어두운 것으로 수도 없이 짓궂은 남자애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 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너는 왜 그렇게 시커멓냐고 던진 한 마디에 크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예쁨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여졌고 나조차도 그게 당연한 줄 알던 때였다. 다시 태어난다면 하얀 피부를 가지고 싶다고 시도 때도 없이 말하고 다녔던 나의 사춘기 시절이었다.


  내가 내 모습을 미워하는 일은 너무나 소모적이었다. 거기에 지칠 대로 지쳐서 20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이제 내 피부를 좀 좋아해 봐야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을 달리 해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까만 것인지 나 자신을 자책하는 일을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결심과 낙심의 순간이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얼마 전 평대리 해변에 조금 누워있다가 피부가 온통 구릿빛이 되어버렸다. 연이에게 피부가 너무 탔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허옇지 않고 건강하게 그을린 내 피부가 마음에 들었다. 삼십 년을 살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어떤 아쉬움도 들지 않은 채 내 피부가 하얗지 않아 다행이라고 느낀 것은. 이토록 황홀한 여름에 멀건 피부라니,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올여름은 유난히 민소매 옷을 자주 입는다.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태닝 된 피부는 어중간하게 가리는 것보다 대놓고 드러내는 것이 더 매력 있고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부디 이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의 색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나의 색깔에 집중했으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비교를 멈추게 해 준 제주에게 많이 고맙다. 제주가 아닌 도시 속에서도 내가 나를 조금씩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다른 누구로 바꾸려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세상 속에 내어놓을 수 있을 때, 그거야말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행복하게 해 주어서 고마웠어.
나의 제주.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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