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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l 11. 2020

퇴사 D+70 단상

나와의 싸움을 계속하는 수밖에




  퇴사 후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의 일환으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었다. 구독자는 조금씩 늘어 100명이 되었고(!), 연재한 글 중 하나는 갑자기 조회수가 1000, 3000... 몇 시간 동안 쭉쭉 오르더니 급기야 10000을 찍기도 했다. 브런치 인기 작가들의 조회수에 비하면 내 조회수는 아주 작고 귀여운 것일 테지만, 내가 쓴 글을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읽었다는 브런치 알람을 보고는 마음이 붕붕 떠올랐다.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심 나 글 좀 쓰나 하는 오만한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그맘때 즈음에는 빨리 대단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을 잠재우느라 꽤 애를 먹었다. 열심히 사는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여도 성공을 할까 말까 할 판에 짠! 하고 잘 되길 바라고 있었다니. 그렇다고 정말로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던 것도 아니고, 게으름 반 부지런 반인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노력을 해 보기도 전에 무언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먼저 그리고 있었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염치가 없었다. 하물며 공무원 붙는데도 꼬박 1년이 걸렸는데 무언가로 인정을 받는 게 한 두 달 만에 될 일인가.


  그럼에도 단번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겉으로는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가야지. 꾸준히 하다 보면 누군가 봐 주는 날이 올 거야. 온갖 여유로운 척, 어른인 척은 다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반응이 빨리 오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혼자 발버둥 치는 기분이었던 건 당연하다.


  생각해 보면 웃기다. 회사에서 남의 일 해 주는 건 그렇게 욕하면서도 3년 동안이나 잘 참아놓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투자하는 시간에는 이토록 인색하다니 말이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만 있다면 10년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퇴사 후 겨우 두 달을 보낸 주제에 초조해하다니. 공무원으로 3년을 버텼으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정체모를(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데 돈은 못 버는) 생활도 최소한 3년은 버텨보는 게 맞지 않을까.


  사실 단번에 하는 성공이란 영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잘 안다. 또,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 만큼 나이를 먹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람(이라 쓰고 나라고 읽는)의 마음은 간사하여 보고 싶은 면만 보게 된다. 성공 뒤에 가려진 인고의 시간들과 좌절의 순간들은 애써 외면하고 해피 엔딩만을 보려 한다. 브런치 인기 작가들, 재조명받는 90년대 가수, 드라마나 영화 하나로 순식간에 빵 뜨는 배우들. 저 사람은 빵 떴네, 부럽다. 하고 쉽게 치부해 버리지만 뒤에 숨겨진 노력의 양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주목을 받기 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시기에, 언제 나를 찾아올지 도무지 상상도 가지 않는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나가는 것. 그건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의 이정은 배우가 그랬고, 부부의 세계 한소희 배우가 그랬고, 90년대에 데뷔했다가 최근에 주목받은 가수 양준일이 그랬다.


  이정은 배우는 1991년 출연한 연극을 시작으로 연기를 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며, 한소희 배우는 연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르바이트에 치여 살았다고 한다. 가수 양준일 씨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웨이터로 일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 터.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경외심이 들기도 하고,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기울였을 어마어마한 노력을 내가 감히 흉내라도 내 볼까 생각하는 찰나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온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한 번 해 보기로 결심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나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일단은 해 보는 거지 뭐.


   그중 하나는 당연히 지금처럼 브런치에 짧은 글을 꾸준히 올리는 일이 될 거다. 두 달 동안 글을 올리며 나 스스로 더 신나서 쭉쭉 써내려 간 글도 있었고, 도저히 써지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 써낸 글도 있었다. 둘 중 어느 쪽이 되었든, 앞으로도 매일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무언가를 쓰는 일을 계속해 보려 한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도통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일단 앉아서 아무 말이나 쓰다 보면 어, 이거 괜찮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처럼 뭐든 하고 있다 보면 나에게도 때가 오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나와의 싸움을 계속하는 수밖에.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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