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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n 30. 2020

아침 일찍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

싫으면서도 좋은 것



   행정직 공무원으로 보낸 3년이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하기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경력이라는 슬픈 사실은 쿨하게 인정하자. 사기업에서의 3년이라면 무슨 일을 맡았든 경력직으로 인정받을  있으니 든든한 무언가를 안고 가는 기분일  같다. 행정직 공무원은.. 10 일했다고 한들, 어디 가서 일한 걸로 인정이나 받을  있을지 모르겠다. 제일 많이 쓰는 단축키는 ctrl+v ctrl+c. 가장 많이 누르는 버튼은 문서 재작성. 작년 문서를 열어 오른쪽 위에 있는 ‘문서 재작성버튼을 누른 , 연도만 올해로 바꾸고  글자 수정하면 간단하게 올해 버전이 완성된다. 문서 재작성은 내가 공무원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배운 일이자, 마지막까지 하다  일이다. 이쯤 되면 무경력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나의  사회생활 3년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던 경험이라고 결론짓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다. 비록 만났던 상사들은   명도 빠짐없이 좋지 않은 이유로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들이었고, 3년을 버티다시피 다니긴 했어도 서른 앞뒤  언저리의 시간들을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나 요즘 들어 균형 잡힌 생활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는데,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직장인만큼 좋은 직업이 없으니까. 억지로라도 일찍 일어나야 했던 그때가 좋기도 했네-라고 종종 회상하는 요즘이다.




  출근하기 위해 억지로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싫었던  일찍 일어나서 해야 하는 일이 ‘출근이었기 때문이고, 좋았던  하루를 일찍 시작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나의 오랜 욕망(?)이자 바람이다.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지만 거의 실패하고 있는 . 잘하는  같다가도 절대 2 이상은 유지되지 않는 . 날이 밝기  푸르스름한 새벽을 온전히 홀로 누리는 일이 얼마나 은밀하고 충만한 일인지 한 번이라도   사람은  거다. 책을 읽어도, 일기를 써도, 밖에 나가서 달리기를 해도,  해도 좋다. 어두웠던 공기에 점차 빛이 깃드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도 좋고, 느긋하게 아무도 없는 길을 청소하며 지나가는 트럭 운전기사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는 일도 좋다. ‘아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 좋네. 앞으로 자주 이래야겠다항상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뿐. 다음 날엔 또다시 이불속에서 꿈틀 거리며 힘겨워하는  현실이다.


  이건 직장인 시절의 이야기인데, 출근 삼십 분 전에 겨우 일어나 아침밥은 커녕, 씻는  마는   얼굴에 아무거나 대충 찍어 바르고 출근하는 날과 일찍 일어나 30분쯤  앞을 달리면서 오늘 하늘 모양은 어떤지 살피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서는 날은 천지차이였다. 별거 아닌  같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뿌듯함 때문에 하루의 흐름 자체가 다르다. 하루 종일 에너지가 샘솟고, 내가 예뻐 보인다. 모든  기상 시간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당기면 가능한 . 자기 계발서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허구한  성공하고 싶으면 새벽에 일어나라고 말하고  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싶다. 직접  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니까.


  아침에 일찍 일어난 날의 바이브가 그렇지 않을 때와는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을 너무나  알기 때문에 항상 아침을 동경하지만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일은  그리 어려운지.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인간의 나약함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은 다름 아닌 아침에 일어나야  때이다.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직장인 생활이 몸에 배어 있어서인지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달리기를 나가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2, 3 정도 6 반에 일어났을까. 기상 시간이 점차 늦어지더니 백수 모드를 제대로 장착한 요즘에는 8시에서 8  사이 늦춰졌. 퇴사 직후 ‘, 나도 이제 아침형 인간이 되려나 !’ 호들갑을 떨었던 내가 적잖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나가는 하루키는 달리고 싶지 않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만원 전철에 올라 통근하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하는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정도 달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정도도 못하면 천벌을 받을 거다.’  맞다. 나는 적어도 매일 아침 출퇴근 대열에 끼지 않아도 되고, 싫은 사람들을 마주한  언제 끝날  모르는 회의를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어렵고 싫은  하나쯤은  인생에 끼워 넣어도 큰일 나지는 않을  같다. 아침 일찍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은 출근하기처럼 완벽하게 싫은 것도 아니니까 마음만 먹으면   있지 않을까. 다시 분발해 보자는 의미에서 오늘 밤에는 6 반으로 알람을 맞춰 두고 잠들 생각이다. 부디 내일 아침 알람이 외롭게 혼자 울고 있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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